"이사했지만 또 이사"…자동차 번호판까지 바꾸고 피신하는 피해자들

사회

뉴스1,

2026년 October 28일, AM 05:50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이사 갔던 곳에서 다시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스토킹 피해를 입은 40대 여성 A 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거처를 두 차례 옮겼다. 긴급응급조치가 내려진 한 달 동안 가해자의 연락과 방문은 없었지만, 조치가 끝난 뒤 잠정조치로 이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2차 스토킹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당시 스마트워치도 지급받지 못한 채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다 다시 이사해야 했다. 자동차 번호판까지 교체했다. 이후 피해자 지원기관에서 이사비와 번호판 교체비 등을 지원받았지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생활 공간을 바꿔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었다.

이는 올해 경찰대학에서 실시한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의견수렴 조사 연구'에서 피해자가 직접 밝힌 경험이다.

스토킹·가정폭력·교제폭력 등 관계성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스마트워치와 임시숙소, 민간경호 등의 제도는 운영되고 있지만,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하지 못하면서 피해자 스스로 일상을 바꿔야 하는 현실이다.

거처를 옮긴 뒤에도 가해자의 접근은 계속됐다. 같은 연구에 참여한 피해자 지원기관 종사자는 가해자를 피해 충남 논산으로 이사한 여성이 새로 거주하는 아파트 주변을 남성이 계속 맴돌아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원기관도 경찰에 순찰을 요청했지만, 종사자 진술에 따르면 경찰은 가해자가 직접 위해를 가하거나 말을 거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각 출동하지 않았다.

피신한 곳의 주소가 가해자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2021년 인천에서는 약 3년간 스토킹과 협박에 시달리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여성의 새집 주소가 노출됐다.

당시 피해 여성은 코로나19 접촉자로 분류돼 보건소에 자가격리 주소를 알렸다. 이후 가해자가 가족을 사칭해 피해자가 거주하는 구보건소에 전화하면서 새 주소를 알아낸 것이다.

가해자는 새 주소의 구체적인 위치를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메시지까지 보냈다. 피해자는 접근금지 조치도 소용이 없어 멀리 이사했는데 새로운 거주지마저 알려졌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집에도 못 돌아가…가족·직장까지 번진 피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도 주거지 방문을 막지 못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은 지난 8월 주거침입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남성에게 벌금 90만 원과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 남성은 별거 중인 50대 아내의 주거지에 두 차례 침입하고, 긴급응급조치를 14차례 위반하는 등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총 22차례 스토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법원의 접근금지 잠정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던 지난해 11월 4일에도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가 베란다 앞에서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이사 오늘 가는 거 맞는 거지"라고 말했다.

가해자와 마주칠까 두려워 자신의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포기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30대 여성 B 씨는 가해자가 잠정조치 4호 위반으로 구치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에 있는 짐을 챙기기 위해 경찰에 동행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B 씨 진술에 따르면 경찰은 "업무가 꼬이는데 이거 꼭 출동이 필요합니까? 가해자가 앞에 있어요? 스마트워치 있으시죠? 그럼 가해자 보이면 누르세요"라고 답했다. 비공개 보호시설 관계자까지 동행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B 씨는 결국 집에 가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가족 집으로 피신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지난 9월 경기 광주에서는 가정폭력을 피해 어린 딸과 다른 가족 집에 머물던 30대 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딸도 다쳤으며, 경찰은 이혼소송 서류 송달 과정에서 피해자의 새 주소가 노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주거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스토킹 피해 여성 C 씨는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가 부착됐지만, 자신의 집과 가해자의 직장이 1㎞도 떨어져 있지 않아 경보가 반복적으로 울리고 경찰의 확인 전화가 이어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20대 피해 여성 D 씨는 가해자가 본가 주소까지 알고 있어 어머니와 함께 임시숙소로 피신했다. 그러나 침대가 하나뿐이어서 하루 2만 원씩 총 10만 원을 추가로 내고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을 이용해야 했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피해자에게 제공되는 민간경호는 지원 대상과 기간 모두 제한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에서 위험도가 '매우 높음'으로 분류된 사건 중에서도 특히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경찰 안전조치심사위원회 심의와 시도경찰청 승인을 거쳐 지원된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민간경호 지원 대상자는 2023년 98명에서 2024년 156명, 지난해 421명으로 증가했다. 기본적으로 하루 10시간씩 7일간 경호원이 배치되며, 연장하면 최대 14일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경호비를 직접 부담하지 않지만,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않거나 지원이 끝난 뒤 개인적으로 사설 경호를 이용하려면 하루 20만~30만 원 수준부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예산안에서 민간경호 지원 예산은 올해와 동일한 24억5000만 원으로 편성됐다. 스마트워치 예산도 올해와 같은 18억800만 원으로 반영됐다.

그러나 경찰은 경호 인건비 인상 등을 고려해 민간경호 예산 2억5000만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봤다. 스마트워치 지급도 전년 대비 24.7% 증가하면서 기기 확보를 위한 예산 8억 원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두 사업 모두 증액분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임시숙소 지원 예산은 올해 9억4200만 원에서 내년 12억3600만 원으로 늘었지만, 올해는 이용 수요 증가로 연말까지 예산 부족이 예상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임시숙소 지원은 6515건, 총 1만1221박에 달했다. 이 기간 예산 집행률은 89.1%로, 남은 예산 1억 300만 원은 1409박을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에경찰은 지난 9월 법무부에 1억6000만 원의 추가 예산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별도 회신을 받지 못했다.

법무부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진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차관)은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현행법에 처벌 공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직무대행은 가해자가 피해자 차량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거나 직장에 찾아오는 등의 행위와 관련해 "강제·강요 등의 행위인데, 폭행·협박 등이 수반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공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피해자 보호를 위해 처벌 필요성과 잠정조치 등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시숙소 예산 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예산처와 예산 증액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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