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번 연락·폭행에도…스토킹가해자 10명 중 8명은 풀려난다

사회

뉴스1,

2026년 October 29일, AM 05:50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엄마 집에 없니? 어디 놀러 간 거야? 2022년 10월 한 남성은 헤어지자는 연인의 아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딸에게는 전화까지 걸었고, 피해자에게는 카카오톡 메시지 3276회와 문자 138회를 쏟아냈다. 다른 SNS 계정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연락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19년 말 만나 교제하던 중 음식점을 함께 운영했다. 남성은 피해자가 설거지를 제대로 못 한다며 뜨거운 물이 담긴 프라이팬을 피해자에게 던졌다. 도망가려는 피해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피해자를 계단에서 밀쳐 손가락을 다치게 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법원이 접근·연락 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남성은 멈추지 않았다. 열흘 뒤 다시 문자 수십 개를 한밤중에 보내며 "신고하든 말든 한마디만 할게요"라고 했다. 피해자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법원 판단은 '집행유예'였다. 서울서부지법은 2024년 5월 폭행·상해·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자녀 양육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 참작된 결과다.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101번 걸고 메시지 116회를 보낸 한 남성은 법원의 접근·연락 금지 결정 뒤에도 문자를 76번 보내고 전화는 57번 쏟아냈다.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법원에 접근·연락 금지 결정 취소를 신청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원지법은 지난해 5월 이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가해자가 초범이고 연락 내용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이를 암시하는 내용은 아닌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이 고려된 결과다.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분류된 사건에서 1심의 실형 선고 비율이 3년째 20%를 밑도는 것으로 29일 나타났다. 반복적인 연락이나 접근금지 위반, 재범 위험에도 불구하고 관계성 범죄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이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202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의 1심 형사공판 처리인원 3355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582명으로 17.3%에 불과했다. 벌금 등 재산형 1326명(39.5%)과 징역형 집행유예 990명(29.5%)을 합하면 69%였다.

실형 비율은 2022년 22.7%에서 2023년 17.3%로 낮아진 뒤 2024년 17.5%, 지난해 17.3%로 3년째 20%를 밑돌았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형 선고자 582명 가운데 264명(45.4%)의 형량이 1년 미만이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절한 사건에서도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청주지법은 2023년 연락 금지 잠정조치를 받고도 공중전화로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한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형의 집행이 유예된 이유 중 하나는 '가해자가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피해자를 스토킹해 벌금형을 선고받고 재차 범행을 저지른 사건에서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한 50대 남성은 지난 7월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은 후 18일 뒤 피해자의 가게에서 소란을 피우고 경찰의 경고에도 다시 찾아갔다. 전화와 문자로 28차례 연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춘천지법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가해자가 반성할 기회를 가진 점을 참작해 이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던 반의사불벌 조항은 2023년 7월 폐지됐다. 그러나 처벌불원은 여전히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요소이자 집행유예 판단의 주요 긍정 사유다.

형사처벌에 앞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피해를 예방하는 보호조치도 법원 문턱이 높다. 법원은 스토킹 행위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4호를 경찰의 신청과 검사 청구를 거쳐 결정할 수 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잠정조치 4호에 대한 경찰 신청은 2466건, 검사의 법원 청구는 1798건이었다. 이 가운데 법원의 유치 결정은 563건으로 검사 청구 건수 대비 31.3%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교제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범죄에서는 선처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친밀관계 범죄에서는 처벌불원이 어느 쪽으로도 적용돼서는 안 된다"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통제하거나 회유·협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민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피해자의 불안을 고려해 잠정조치 등 보호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직접 찾아가는 등 위험 행위가 반복된 경우 실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법조인은 "판사들이 연인 사이였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아는 사람한테 범죄를 당했다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 더 큰 충격"이라며 "감형 사유가 아니라 가중 사유"라고 말했다.

zionwk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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