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가을을 거두어 갈무리하는 계절로 본다. 여름내 땀으로 흩어진 기운을 다시 모으고, 다가올 겨울을 견딜 힘을 미리 쌓아두는 때다. 옛 어른들이 굳이 이 무렵 아이에게 보약을 먹인 것은 막연한 풍습이 아니었다. 아프고 난 뒤 고치기보다 아프기 전에 약한 곳을 채워두려는 예방의 발상이었다. 오늘날 의학이 말하는 ‘면역 관리’를 우리 조상들은 이미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30년 가까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환절기 건강은 곧 성장의 문제라는 점이다. 일교차가 커지면 체온 조절이 미숙한 아이들은 쉽게 감기와 비염에 걸린다. 코가 막히면 입을 벌리고 자게 되고,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 밤새 뒤척인다. 열이 나고 기침이 이어지면 입맛도 잃는다. 성장호르몬은 깊은 잠 속에서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고, 뼈는 충분한 영양 위에서 자란다. 잔병치레가 길어지면 잘 먹고 잘 자는 성장의 기본 조건이 통째로 흔들린다. 감기를 달고 겨울을 난 아이가 같은 기간 또래보다 덜 자라는 모습을 진료실에서 숱하게 본다.
그렇다고 보약이 만능이라는 말은 아니다. 보약의 본뜻은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는 소화 기능을 돕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는 호흡기를 튼튼히 하며, 잠이 얕고 예민한 아이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남이 먹고 좋았다는 약이 내 아이에게 맞으리라는 법은 없다. 체질과 현재 상태를 정확히 살피는 것이 먼저다.
약보다 앞서는 것은 일상이다. 얇은 옷을 겹쳐 입혀 기온에 맞게 입고 벗게 하고, 실내가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게 살피며, 일찍 재우는 습관을 들이는 것. 찬 음료와 군것질을 줄이고 제철 음식을 고루 먹이는 것. 해가 있을 때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것. 옛 어른들의 보약 한 첩에는 이런 정성까지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다. 하루 대부분을 실내와 학원에서 보내고, 밤늦게까지 화면을 들여다보다 잠드는 아이가 많다. 햇볕을 쬐고 땀 흘려 뛰어놀 시간은 줄었고, 끼니는 간편식으로 때우기 일쑤다. 몸이 계절의 변화에 적응할 기회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환절기 건강을 예전보다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다.
아이의 키는 어느 날 갑자기 크지 않는다.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는 평범한 하루가 쌓여 한 뼘이 된다. 기온이 한 칸씩 내려가는 이 계절, 아이의 몸을 한 번 더 살피는 부모의 손길이 올겨울 성장의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