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두루 최호연 변호사(왼쪽)와 법무법인 지평 박아름 변호사가 27일 서울 중구 지평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김민지 기자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과 희망이에요. 원래 없던 종(種)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공항 난민들께 파란 장미를 드려요. 한 번은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에서 이긴 분이 꽃을 잘 말려 저희에게 보여주셨어요. 당신들 생각하면서 버텼다고요."
인천국제공항은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는 곳이다. 같은 출국장 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지조차 모른 채 '난민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공항이나 항만 등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정식 심사에 회부되지 못해 출국대기실이나 환승 구역 등에서 장기간 머무는 사람들을 '공항 난민'이라 부른다.
난민법에 따르면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받은 법무부는 7일 이내 정식 난민심사 회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불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난민 신청자는 취소소송에서 승소하기 전까지 정식 난민심사를 받지 못해 본국을 떠난 사유와 박해 가능성 등을 충분히 소명하기 어렵다.
이들을 위해 공항을 찾는 변호사들이 있다. 법무법인 지평의 박아름 변호사(36·변호사시험 8회)와 사단법인 두루의 최호연 변호사(31·변호사시험 12회)는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공항으로 향한다. 한 손에는 파란 장미, 다른 손에는 옷·세면도구 등 생필품 꾸러미가 들려 있다.
<뉴스1>은 지난 27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와 최 변호사를 만나 공항 난민들이 처한 현실과 이들을 돕는 법률지원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갈 곳 없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보노
최 변호사는 프랑스 교환학생 경험을 계기로 난민·이주민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파리의 난민 캠프 봉사활동에도 참여한 그는 "나는 학생 비자도 있고 기숙사도 있고 돌아갈 나라도 있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고민이 커졌다. 난민들을 돕기 위해 로스쿨에 진학한 최 변호사는 '꿈을 업으로' 삼게 됐다.
박 변호사는 방송기자 출신이다. 기자 시절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취재하며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취재를 넘어 법률적 도움을 직접 제공하고 싶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꾸준히 공익사건을 맡아온 그는 공항 난민 지원에 대해 "이들이 공항을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조력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두 변호사에게 프로보노란 법률적 도움이 가장 절실하지만 정작 그 도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법의 보호가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다.
박 변호사는 "공항 난민들은 변호사의 조력이 없다면 권리를 구제받을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며 최소한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 조력 생태계'가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지평 박아름 변호사(오른쪽)와 사단법인 두루 최호연 변호사가 27일 서울 중구 지평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김민지 기자
옷·속옷부터 슬리퍼까지…법률 조력자이자 '살림꾼'
공항 난민을 만나러 가는 변호사들의 가방에는 법률 서류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생활비가 떨어진 공항 난민들에게 슬리퍼와 옷, 속옷, 세면도구 등 생필품을 전달하는 일도 변호사들의 몫이다. 외부 단체가 물품을 마련해도 출국 장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변호사뿐이어서 직접 전달해야 한다.
최 변호사는 "접견을 갈 때 다이소에 들러 이것저것 사 간다"며 "(공항 난민들이) 슬리퍼도 없이 입국한 상태 그대로 몇 달을 지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옷도, 속옷도 없이 입고 온 옷이나 가방에 든 한 벌 정도의 여벌로 몇 달을 살아야 한다. 너무나 비인간적"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크림 같은 액체류도 보안 검색을 통과할 수 있도록 100㎖ 이하로 소분해 지퍼백에 담아 간다며 "살림꾼도 저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생필품 전달뿐 아니라 소송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공항 난민들은 위탁수하물을 받을 수 없어 짐에 든 증거자료를 꺼내기 어렵다. 변호사들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거나 직접 진정을 제기해 서류를 전달받기도 하지만, 항공사가 짐을 출발 공항으로 돌려보내거나 유실물로 처리하면 찾기 어렵다.
박 변호사는 "여러모로 증거를 모으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본국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연락해 당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의 어려움은 정식 심사에 앞선 회부심사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출입국 당국은 신청자를 면접해 7일 이내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기는 어렵다.
최 변호사는 회부심사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통역사만 있고 2~3시간 정도 면접을 해 정식 난민 심사로 넘길지 판단하는 것"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항 난민들이) 심리적 압박감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고, 통역을 거쳐야 하므로 (자신의 발언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후 신청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회부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최 변호사는 "조금 전에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얘기하느냐는 식으로 (심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며 "진술에 모순이 있다고 보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항 난민이 찍은 인천공항 내 기도실. 변호사들이 선물한 파란 장미가 옆에 놓여있다. (사단법인 두루 제공)
파란 장미에 담긴 바람…"누구나 정당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불회부 결정 취소소송에서 이겼다고 곧바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1심에서 취소 판결을 받아도 출입국·외국인청이 항소하면 공항 인근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등 별도 시설에 머물러야 한다.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정식 난민심사를 받아야 한다.
박 변호사는 1심에서 취소 판결을 받은 뒤에도 항소로 인해 영종도에서 몇 달 더 머물러야 했던 공항 난민 사례들을 언급했다. 그는 "접견을 갔을 때 수심이 깊고 힘들어하던 공항 난민분이 오랜 소송을 거쳐 공항에서 나가는 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너무 짠하다"며 "몇 달 동안 건물 안에 갇혀 있다가 나오는 해방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한편으로는 그분들 앞에 펼쳐질 일이 장밋빛만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공항을 나서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난민 인정과 한국 사회 정착이라는 또 다른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변호사는 공항 난민 법률지원의 핵심은 난민 인정 자체가 아니라 정당한 심사를 받을 기회를 보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난민을 더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싸움"이라며 "법률 조력이 필요한 공항 난민의 수 자체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변호사 개인의 선의와 헌신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적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공항 난민들이 공항 밖에서 머물 수 있는 별도 체류 시설을 마련하고, 출입국항 난민심사 절차와 불회부 결정 기준도 제도의 취지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공항 난민들에게 건네는 파란 장미에는 기적 같은 선의에 기대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정당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공항 난민들과 함께한 파란장미 꽃다발.(사단법인 두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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