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까지 맡긴 중개사가 가로챈 보증금, 협회 공제로 받을 수 있을까[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31일, AM 12:31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공인중개사가 중개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손해를 입히면 피해자는 중개사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사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보증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하거나 공탁을 하도록 정한다(제30조 제3항). 그런데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이 사건 임대인에게 공제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대인이 중개사에게 오피스텔 관리까지 맡겼다가 입은 손해라는 이유였다.

(사진=나노바나나)
(사진=나노바나나)
2018년 4월 임대인은 평소 거래하던 중개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중개사는 한 오피스텔 세입자가 급전이 필요해 전세를 월세로 바꾸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줄어드는 보증금 3,500만 원을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했다. 임대인은 의심하지 않았다. 2013년 이 중개사의 중개로 오피스텔 11채를 산 뒤로 임대차계약서 작성과 보증금 입금 안내, 관리비 집행을 이 중개사에게 맡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입자는 월세 전환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중개사는 2024년 3월까지 같은 방식으로 15차례에 걸쳐 6억 1,710만 원을 가로챘다. 임대차가 끝난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4,920만 원도 맡아 두었다가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

임대인은 중개사와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협회에는 연도별 공제 한도 안에서 5억 2,985만 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1심은 중개사에게 5억 9,681만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협회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항소심도 같은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6. 8. 13. 선고 2025다217842 판결).

협회 공제약관 제7조 제2호는 “상업용 건축물 및 주택의 임대관리 등 부동산의 관리대행 업무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 손해로 정하고 있다. 항소심은 중개사가 월세 전환을 핑계로 돈을 받은 행위가 겉으로는 임대차계약 변경을 알선하는 것이어서 중개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 손해는 오피스텔 관리를 대행하다 생긴 것이므로 이 조항에 따라 보상 대상에서 빠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손해가 관리대행 과정에서 생겼다는 원심 판단은 수긍했지만, 약관조항의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개행위에는 관리대행과 함께 이루어지는 중개행위도 포함된다. 이 조항은 중개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순수한 관리대행으로 인한 손해가 보상 대상이 아님을 주의적으로(확인하는 뜻으로) 적어 둔 규정이다. 관리대행과 중개행위가 함께 이루어져 중개사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면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 조항이 그런 경우까지 보장에서 빼는 취지라면 공인중개사법에 어긋나고,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서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

다만 대법원은 월세 전환을 핑계로 돈을 받은 행위는 중개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반면 임대차가 끝난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횡령한 부분은, 중개사가 새 임대차계약을 알선하려고 한 행위였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광주고등법원은 이 점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

원심의 해석에도 근거는 있었다. 원심은 공제약관 제7조의 다른 호들이 모두 중개행위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들었다. 중개행위가 아닌 순수한 관리대행 손해는 처음부터 보상 대상이 아니므로, 제2호를 그렇게만 읽으면 따로 둘 이유가 없는 조항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법원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본다. 협회 공제는 협회가 임의로 설계한 보험상품이 아니라, 공인중개사법이 중개사에게 가입을 강제하고 보장 범위를 같은 법 제30조의 손해배상책임으로 정한 제도다. 중개사의 책임이 성립하는데도 관리를 함께 맡았다는 이유로 보장에서 빼면, 거래당사자는 공제증서를 받고도 보호받지 못한다. 약관 조항 하나의 실익이 줄어드는 것보다 법이 정한 보장에 공백이 생기는 쪽이 더 큰 문제다.

중개사에게 관리까지 맡기는 임대인이라면 중개가 끝날 때 받는 공제증서 사본에서 보장금액과 보장기간부터 확인해야 한다(공인중개사법 제30조 제5항).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계약 조건을 바꿀 때에는 세입자에게 직접 확인하고, 돈은 세입자 계좌로 보내야 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