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사람들연구소 이사장)
국가라는 정의와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중에 사람은 늘 그곳의 중심이었다. 사람의 '인재화'에 따라 흥망과 부침이 함께 했다. 기업의 품격을 이야기하면서 기업의 미래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교육의 품격에서는 많이 가르치는 교육에서 제대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를 인재라고 부를 것인가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인재를 비교적 단순하게 정의해 왔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시험을 잘 보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조직이 요구하는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 인재였다. 산업화 시대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빠르게 선진국을 추격해야 했고,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배우고 개선하며 정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재들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물론 전 국민의 합치된 인내와 노력 목표가 있어 가능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검색한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역하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료를 분석한다. 일정한 영역에서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능한 사람'의 조건이었던 능력 상당 부분을 이제 기계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인재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서,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16일 방영된 EBS '위대한 수업' 강연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인재의 덕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EBS 방송 화면 갈무리)
답을 잘 찾는 사람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
산업화 시대의 인재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주어진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문제를 푸는 능력의 상당 부분을 AI가 담당할 수 있다.
오히려 더 귀해지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불편을 발견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상상하며, 사회가 앞으로 부딪힐 문제를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 새로운 시대의 인재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 시험 문제를 잘 풀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든 것이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활방식을 상상했기 때문이다(물론 성공의 첫걸음은 한국 MP3의 창조적 모방이었지만).
인재는 정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도, 기업의 채용도 이 기준으로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는 판단력이 더 비싸진다. AI는 여러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이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판단력은 시험공부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 실패, 토론, 독서와 현장 경험이 축적돼 만들어진다. AI 시대에는 정보의 격차보다 판단의 격차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1 Talent, 2 Talent, 10 Talent의 시대
앞으로는 사람을 근무시간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데 그치지만, 어떤 사람은 AI를 활용해 두 배의 생산성을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업 하나를 만들어 수십 명, 수백 명의 일을 만들어낸다.
나는 앞으로 인재를 일종의 '탤런트'(Talent)라는 가치 단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균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1 Talent라고 한다면, 두 배의 문제 해결 능력과 생산성을 가진 사람은 2 Talent, 조직과 산업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10 Talent가 될 수 있다.
물론 사람의 존엄을 숫자로 평가하자는 뜻이 아니다. 일의 가치와 보상에서 능력과 기여의 차이를 더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의미다. 그렇다면 임금과 보상 체계 역시 연공과 근속 중심에서 가치와 기여 중심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능력만 뛰어나다고 인재는 아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를 위해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조직과 사회를 이용하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좋은 인재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인재는 능력에 인격과 책임이 더해진 사람이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고,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성공을 독점하지 않고 조직과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인성을 넘어가는 신념과 가치의 영역이 오히려 중시되며 이 부분이 개인 경쟁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AI가 지능의 상당 부분을 보완해 줄수록 인간에게 남는 차별화 요소는 오히려 신뢰와 책임, 협력과 리더십 같은 인간적인 능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2차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뉴스1 허경 기자
천재 한 명과 평범한 백 명, 무엇이 중요한가
그렇다고 소수 천재만 필요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10 Talent가 뛰어난 방향을 제시해도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수많은 1 Talent와 2 Talent가 필요하다. 연구자가 기술을 만들면 생산자가 제품을 만들고, 영업과 서비스가 시장으로 연결한다.
인재 국가는 천재 몇 명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을 제대로 연결할 수 있는 나라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국가인재경영이다.
인재가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 간 경쟁의 핵심은 영토나 자원만이 아니다. 사람이다. 세계적인 AI·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국적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인재를 찾아 움직인다. 한국의 인재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다.
인재가 대한민국에 머물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좋은 연구환경과 합당한 보상,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불필요한 규제가 적은 사회,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만큼 인정받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다면 세계의 인재를 대한민국의 인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보는 국가
우리는 흔히 사람을 인건비라고 부른다. 기업의 회계장부에서도 사람에게 지급하는 돈은 비용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AI 시대의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면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는 사고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기업도 국가도 사람에게 쓰는 돈을 비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
교육, 재교육, 연구 환경, 보상 체계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본투자가 된다. 대한민국은 자원이 많아서 성장한 나라가 아니다. 사람으로 성장한 나라다. 다만 이제 인재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혼자 뛰어난 사람에서 다른 사람의 능력까지 끌어내는 사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만 뛰어난 사람에서 능력에 책임과 품격을 갖춘 사람으로.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은 역설적으로 더 좋은 사람을 가진 나라가 이기는 경쟁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G3를 꿈꾼다면 세계 최고의 기술만 가져서는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인재가 성장하고, 머물고, 찾아오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인재가 능력만큼 책임을 알고, 성공만큼 공동체를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사람의 가치를 넘어 '인재의 품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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