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기 타고 월드컵 직관…2조6000억 불법도박판 뒤엔 ‘기업형 조직’

사회

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3일, PM 10:54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전세기를 타고 카타르 월드컵을 관람하고 조직원들에게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 등 호화생활을 누린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대학교수와 대기업, 글로벌 소셜미디어(SNS) 업체 출신까지 전문인력으로 영입하고 자체 게임엔진을 개발하는 등 기업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2조6000억원대 불법 도박판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 일행이 이용한 전세기(사진=충북경찰청)
A씨 일행이 이용한 전세기(사진=충북경찰청)
충북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도박공간 개설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범죄단체 조직·가입 등의 혐의로 국내 총책과 조직원, 대포통장 유통책, 도박 참여자 등 87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8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2016년 말레이시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스포츠토토와 바카라, 슬롯머신 등을 제공하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말레이시아의 해외 총책, 국내 총책이 지휘 체계를 구축하고 그 아래 실장과 팀장, 팀원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했다.

경찰이 범행에 사용된 계좌 316개의 거래 내역 319만건을 분석한 결과, 2022년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확인된 도박자금 규모는 2조6680억원에 달했다. 2016년부터 사이트를 운영해온 만큼 실제 도박자금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조직 운영 방식은 일반 기업과 유사했다. 충·환전팀과 고객관리팀, 개발팀을 별도로 두고 헤드헌터를 통해 대학교수와 대기업, 해외 유명 SNS 업체 출신 등을 영입했다. 조직원들은 영어 가명을 사용했으며 매주 실적 점검 회의도 진행했다. 고급 전문인력에게는 월 최대 30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박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기술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 국내에 게임 회사를 설립해 도박사이트용 게임엔진을 직접 개발하고 다른 도박업자에게 판매했다. 필리핀에는 조직원을 파견해 카지노 사업까지 추진했다. 해외 축구팀 유니폼과 경기장에 도박사이트를 광고하는 등 사업 영역도 확장했다.

이들이 범죄수익으로 누린 생활은 호화로웠다. UAE 총책인 40대 A씨는 2022년 핵심 조직원들을 두바이로 불러 모은 뒤 개인 전세기를 이용해 카타르로 이동했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스카이박스에서 관람하고 조직원들에게 고가의 명품 시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총책인 40대 B씨는 현지에서 재력을 과시하다 지난 4월 납치 범죄의 표적이 됐다. 납치범들에게 수십억원을 빼앗긴 뒤 현지 경찰에 구조됐지만, 이 과정에서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현지에서 검거됐다.

압수물품 현황(사진=충북경찰청)
압수물품 현황(사진=충북경찰청)
경찰은 지난해 7월 다른 사건을 수사하던 중 조직원이 사용한 계좌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국내외 조직원 72명의 신원을 특정하고 경찰청·국가정보원 등이 참여하는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를 통해 UAE·말레이시아 수사당국과 공조했다.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에 있던 총책 등 10명을 현지에서 검거했으며, 이 가운데 국내 총책과 조직원 등 8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UAE와 말레이시아 총책은 현지에 구금된 상태로 강제송환 절차가 진행 중이다.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는 조직원 21명에 대해서도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이 조직의 범죄수익을 1637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619억원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을 신청했으며, 현재까지 81억원 상당에 대해 추징보전 결정을 받았다. 불법 도박사이트 9개도 차단했다.

박종섭 충북경찰청장은 “하부 조직원 검거에 그치지 않고 해외에 있는 총책 등 주요 운영진을 끝까지 추적하고 범죄수익도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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