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공소청에서 깃발이 날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은평경찰서는 지난 5일 오전 8시쯤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남성 A 씨를 살인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70대 여성 B 씨에 대한 실종 신고를 받고 A 씨의 자택에 출동해 숨진 B 씨와 의식불명 상태의 A 씨를 발견했습니다.
이 살인사건의 배경엔 스토킹이 있었습니다. 과거 교제하다 헤어진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A 씨와 관련된 스토킹 및 만남 요구 112 신고는 이번 사건 발생 전까지 모두 4차례나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첫 신고는 2024년 9월입니다. 당시 “남성이 쫓아온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단순 말다툼으로 확인한 뒤 현장 분리 조치했습니다다. 지난 6월에도 은평서에 “헤어지고 싶다, 따라온다”는 유사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현장에서 피의자를 분리하고 순찰차로 귀가 시켰다고 합니다.
같은 달 세 번째 신고를 접수한 남대문경찰서는 A 씨가 B 씨의 직장 인근에서 기다린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습니다. 남대문서는 B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A 씨에 대해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1~3호, 접근 및 통신 금지) 조치를 결정한 뒤 사건을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당시 잠정조치 중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도 함께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하죠.
그리고 A 씨는 지난 7월 18일 접근금지 명령 조치를 어기고 또다시 B 씨의 집을 찾아가 폭행하고 휴대폰을 빼앗은 혐의로 긴급체포됐습니다. 마포경찰서는 반복적인 접근금지 위반과 주거지 침입 정황을 근거로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공소청 단계에서 구속영장은 청구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환자로 건강 상태가 악화된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죠.
영장이 청구되지 않자 경찰은 구치소 유치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등 잠정조치를 신청했습니다. 이후 A 씨는 8월 22일까지 구치소에 유치됐고, 석방 직후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약 두 달간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됐죠. 하지만 A 씨는 위치추적 기간이 종료된 지 불과 2주 만에 다시 B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지난 7월 만약 구속영장 발부됐다면…
가장 아쉬운 대목은 마지막 신고인 지난 7월의 처분입니다. 만약 구속이 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암 말기 선고를 받은 이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범행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고, 그 강도 역시 세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땐 좀 더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선 검사의 판단에 최근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검경의 신경전의 영향도 영향을 끼친 것 아니겠느냐는 의혹도 나옵니다. 실제 올해 들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불청구 하는 비중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일부터 24일까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의 검사 불청구율은 36.2%로, 올해 1∼9월 평균 22.2%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2024년(11.7%) 및 2025년(17.9%)의 수치를 보면 점증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체포영장 불청구율도 공소청 전환 이후 21.0%로, 올해 1∼9월 평균(8.4%)과 2024년 (6.9%) 대비 확연히 높아졌고, 압수수색 영장 불청구율은 공소청 출범 이후 11.7%로, 올해 1∼9월(2.8%)과 2024년(1.8%)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이 같은 수치 변화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무관치 않다는 게 경찰 안팎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방공소은 당시 검사가 피의자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했지만 △피의자가 혐의 사실을 극구 부인한 점 △일부 범죄사실에 대한 보완수사가 필요한 점 △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점 등을 참작해 일단 불구속 수사하도록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연히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고 결과론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론이 혹시라도 권력기관의 기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그리고 경찰도 책임을 다했다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앞서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은 전수조사를 한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10월 19일부터 30일까지 12일간 총 4만 4540건을 들여다봤다고 했죠. 그 중 30% 이상을 고위험으로 분류하고 관리했다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계성 범죄 피해 A등급 관리 대상이었던 B 씨는 보호받지 못했죠. 경찰은 B 씨를 상대로 총 27차례 모니터링을 진행했으나 추가 신고가 없어 조치를 종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A등급 관리 대상자라고 전자발찌를 다 신청·연장하는 것은 아니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전자발찌 종료 일주일 전 안전 이상을 확인했으나 특별히 추가로 요청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종료됐다”고 설명했죠.
반복되는 범죄 양상에도 소극적인 조치를 한 공소청과 경찰, 모두 이번 사건에서 얻는 것이 있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