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유]는 법원 판결문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다. 한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법원이 책임과 결과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따라간다.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판결문에 남은 기록을 통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법정에서 사실의 인정은 오로지 증거에 따라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형사 재판에서는 증거의 채택 여부가 쟁점이 된다.
증거 채택에는 몇가지 원천적 기준이 있는데, 먼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배제하며, 전문(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들어서 전한 말) 증거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 뿐일 때는 자백의 증거능력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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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파일 증거 맞다” -> “증거 아니다”
2025년 2월 27일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한 사건은 이같은 법정에서의 증거 능력 인정 문제를 잘 다룬 사례라 할 만하다. 이 사건은 피고인 2명이 피해자를 기망해 주식 대금 등 명목으로 2억7000만원의 현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된 사기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피고인 사기 행위의 증거로 여러 녹음파일을 저장한 CD를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1심에서는 이 CD가 가진 증거능력, 즉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현금을 편취하고 기망한 행위가 사실임을 CD에 담긴 녹취를 통해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에서는 CD의 녹취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아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는데, 2심 재판부는 녹취 원본의 존재를 문제삼았다. CD에 저장된 여러 녹음파일 중에 1가지 파일만 제외하면 녹취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본파일이 복사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 내용에 해당하는 녹취와 녹취록 역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 녹취를 배제할 때 피고인의 기망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피해자의 진술 뿐이므로 이는 믿기 어렵다는 판단도 덧붙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무죄 판결을 뒤집어 CD 속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내린 녹취의 진본성 문제는 공감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은 녹음자의 의도나 특정한 기술로 내용이 편집, 조작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먼저 원본임이 입증되어야 하고,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면 원본에서 개작 없이 복사된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본 있어야 인정” vs “원본 없어도 인정”
다만 이 지점에서 예외 상황이 발생하는데 원본 제출이 불가능하거나 원본과 사본을 비교할 수 없을 때에는 무작정 증거능력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파일의 생성이나 보관에 관여한 사람한테서 증언, 진술을 듣고 파일에 대한 과학적 검증까지 더해 최종적인 증거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같은 예외적 상황의 근거로 대법원에서 나온 다른 2건의 판결을 인용했다. 2건 모두 구체적 내용은 다르나 증거가 논쟁적일 때 법원이 구체적 조사와 판단을 통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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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디지털포렌식팀의 포렌식 결과 일부 파일은 내용 복원에 실패한 삭제된 파일과 동일한 해쉬값(디지털 지문으로 값이 동일하면 동일한 파일로 간주)을 가지고 있어 원본 그대로 복사된 사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근거를 토대로 대법원은 녹취가 기망행위의 증거라는 피해자 주장을 인정한 반면 어떤 부분이 편집, 조작되었는지 특정하지 못한 피고인들의 주장은 배척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같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녹취의 증거 능력을 배제해 무죄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를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녹음파일 사본의 원본 동일성 증명 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