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민하 정유진 김태섭 기자] “어머니 제발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안 모(90) 씨의 스마트폰에서 흥미진진한 대사가 흘러나왔다. 안씨는 고부 갈등을 주제로 한 인공지능(AI) 제작 숏폼 영상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다. 안씨는 하루에 1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본다고 했지만 그의 지난주 유튜브 애플리케이션 사용 시간을 확인하니 22시간 11분이 기록돼 있었다. 하루 3시간꼴이었다. 그는 놀라며 “그 정도는 아닐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숏폼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김태섭 기자)
◇“방에서 스마트폰만” 숏폼에 갇힌 노인, 고립 땐 치매 위험↑
노인의 하루를 숏폼(짧은 길이의 동영상 콘텐츠)이 빨아들이고 있다. 올해 발표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서 70세 이상의 동영상 서비스 이용률은 2019년 47.1%에서 2025년 84.3%로 뛰었다.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빠른 상승세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처럼 이들 대부분은 스트리밍 플랫폼(유튜브)을 이용해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들의 숏폼 영상 중독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바로 건강이다. 화면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교류가 끊긴 상태인 ‘사회적 고립’은 치매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김진호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2024년 국제학술지 ‘노년학 저널: 시리즈 B’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6663명의 2006~2018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인지기능 저하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회적 고립 및 외로운 상태가 될 경우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노년기에 사람과의 교류가 끊기면 인지기능이 떨어진다”며 “교류를 재개하더라도 잃은 만큼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독거노인 돌봄 현장에서는 치매 노인들의 숏폼 중독을 더 체감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남에서 9년째 독거노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모(59) 씨가 4개월째 돌보고 있는 초기 치매 환자 양모(78) 씨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제가 문을 열고 ‘저 왔습니다 어르신, 잘 주무셨지요’라고 인사해도 양씨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듣지 못할 때가 많다”라며 “3시간의 돌봄 시간 동안 식사를 마친 뒤 함께 TV를 보자고 권해도 ‘힘들다’며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만 본다”고 했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문제는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70세 이상 노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가 없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매년 실시하는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대상은 만 3~69세다. 2004년 청소년 중심으로 시작한 이 조사는 2016년 대상을 60대까지 넓혔지만, 70세 이상은 여전히 포함하지 않고 있다.
NIA는 70세 이상의 낮은 이용률과 조사 여건을 이유로 들었다. NIA 관계자는 “60대까지는 스마트폰 이용률이 90% 이상인데 70대부터는 60%대로 확 떨어진다”며 “과의존은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다보니 70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정된 예산으로 1만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조사 구조상, 혼자 사는 노인 가구는 부모와 자녀를 한 번에 조사할 수 있는 가구보다 조사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도 70세 이상 노인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주무 부처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기정통부 디지털포용정책팀 관계자는 “노인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를 검토해 보겠다”면서도 “70대 이상의 과의존 문제가 그렇게 문제가 되고 필요성이 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렇다 보니 노인의 ‘미디어리터러시’(미디어 정보를 가려 읽는 능력)를 돕는 교육 지원은 외면받고 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디어 역량교육 강화’ 예산은 2025년 49억 4700만원에서 올해 11억 8300만원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미디어교육 대상 노인 기관 및 교육 횟수도 2025년 27개 기관·272회에서 올해(9월말 기준) 4개 기관·30회로 대폭 줄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감소폭이 더 컸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는 노인이 숏폼에 빠져들기 쉬운 조건을 갖춘 만큼,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은 고립, 대인관계나 사회적 관계 감소가 청년층보다 더 크다”라며 “숏폼은 다른 디지털 미디어보다 접근성이 훨씬 높고 단순해 쉽게 문제적 사용 단계로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인 미디어 수용 태세 관련 조사를 폭넓게 진행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인들의 디지털 활동을 더 생산적인 곳에 쓰이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의 스마트폰 사용 기록. (사진=김태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