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천 공장 화재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길. 박현숙 소방가족희망나눔 대표의 초등학교 4학년 딸 민주(가명)가 말했다. 평소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었지만 자신처럼 아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동생이 있다는 엄마의 설명을 듣고서였다.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 안장된 고(故) 허승민 소방위의 묘. 허 소방위는 2016년 딸 민주의 백일잔치를 마친 뒤 비상근무에 투입됐다가 강풍에 날아온 지붕 구조물에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사진=박현숙 대표 제공)
민주도 순직 소방관의 딸이다. 고 허승민 소방위는 지난 2016년 민주의 백일 잔치를 마치고 곧바로 비상 근무에 투입되었다가 강풍에 날아온 지붕 구조물에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안고 자란 아이는 어느새 같은 아픔을 겪는 동생을 걱정할 만큼 컸다. 그러나 민주가 자라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은 이어졌다.
박 대표가 있는 소방가족희망나눔은 순직 소방관 유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다른 유가족의 일상 회복을 돕기 위해 2023년 1월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회원은 유가족 등 100여 명, 현직 소방관과 일반 시민·자영업자 등 특별회원은 300여 명이다. 개인과 기업·기관 후원금 등을 재원으로 유자녀 장학금, 유가족 심리상담·자조모임, 공상 소방관 치료비, 현장 소방관 근무환경 개선 등을 지원한다.
박 대표는 “순직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남은 가족들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평생이다”며 “영결식을 끝내고 나서부터가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라고 말했다. 남겨진 배우자와 자녀, 부모가 저마다 가족의 빈자리를 마주하며 슬픔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유족들이 겪을 힘든 시간을 알기에 또 다른 유가족의 아픔을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난달 17일 순직 소방관 추모행사에서 김 소방위의 순직 소식을 접한 박 대표는 딸 민주, 소방가족희망나눔 이사들과 함께 부천으로 향했다. 새로운 유가족을 만나면 손부터 잡아주고 안아주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고 성치인 소방령의 순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지난해 추모행사에서 유가족들을 챙겼던 고 성씨는 같은 해 11월 고양시 자동차공업사 화재 진압 중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올해 3월 순직했다. 박 대표는 그를 “순하고 푸근한 분”으로 기억하며 유가족들을 보듬어주던 소방관마저 순직했다는 소식에 슬픔이 컸다고 했다.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하는 박 대표는 “남편의 묘 주변에 더는 사고로 돌아가시는 동료들의 자리가 생기게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며 “순직할 때마다 영웅이라고 칭송하기 전에 현직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고(故) 허승민 소방위의 딸 민주(가명)가 2024년 1월 태백소방서에서 열린 생일파티에서 119 소방차 모양 케이크의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태백소방서)
박 대표는 남편이 강풍 피해 현장에 투입됐을 때도 인력이 부족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인력 충원과 첨단 장비의 신속한 현장 투입 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식 보장과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지원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겨진 가족에게도 안전한 일상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박 대표는 바람이 많이 불면 외출이 두렵다. 시어머니도 그런 날이면 가족들에게 밖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 전화가 울리면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얼마 전 민주는 유튜브 영상과 다른 유가족의 도움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박 대표는 “아빠가 있었으면 함께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을텐데 싶었다”며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빈자리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도움도 달라진다.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경험을, 중고등학생에게는 진로를 함께 고민할 멘토가 필요하다. 그는 “아이들이 슬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펼치며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의 유자녀 프로그램에 고마움을 전하며, 소방청과 보훈부가 힘을 모아 아이들의 성장을 오래도록 함께해주기를 바랐다.
소방가족희망나눔이 유가족 일자리와 활동 재원 마련을 위해 세종 소방청 인근에서 운영 중인 문구점. (사진=박현숙 대표 제공)
유가족들은 함께 일자리도 마련했다. 세종 소방청 청사 인근에서 운영 중인 문구점이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학교에 일이 생기면 시간을 낼 수 있는 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현재 유가족 한 명이 점장을 맡고 있으며 수익 일부는 단체 운영과 지원 사업에 보탠다.
그의 시선은 치료 중인 공상 소방관과 가족들에게도 향한다. 박 대표는 치료비와 더불어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는 “현직 소방관들이 제 남편이자 아이 아빠라고 생각한다”며 “모두 안전하게 퇴근해서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일상을 누렸으면 한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