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장의 시간[김학균의 투자레슨]

주식

이데일리,

2025년 6월 12일, 오전 05:01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최근 한국증시의 상승세가 범상치 않다. 글로벌 약달러와 신정부 출범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한국증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4월 초 이후 미국 달러 가치는 약세로 반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지출 축소 없는 감세 추진’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달러 약세를 불러오고 있다. 재정적자 우려가 반영된 달러 약세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이를 반기는 측면도 있다. 달러 약세를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브 마린은 대외불균형 완화를 위해 약달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고 5월에 있었던 한국-미국, 대만-미국의 무역협상에서 환율이 의제로 올랐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급락했다. 4월10일 1480원대까지 상승했던 원·달러 환율은 6월9일 현재 1350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약달러는 비달러 자산에 대한 선호도를 높인다. 달러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4월 중순 이후 한국과 대만 등 신흥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5월 1조 100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면서 10개월 만에 매수 우위로 돌아선 데 이어 6월에는 매수강도를 강화하면서 3조 1000억원(6월1~9일)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도 주식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수부양책은 경기의 추가 추락을 막는 버팀목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정부 출범 초기 법제화를 공언하고 있는 상법 개정 역시 거버넌스 개선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에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년 저평가 종목들인 지주회사의 강세는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기대가 투영된 결과다.


미국 증시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조치 이후 빠르게 반등하고 있지만 한국증시에 비하면 상승의 기울기가 완만하다. 연간 성과를 비교해 보면 양국의 차이는 더 도드라지는데 2025년 들어(~6월9일) 한국 코스피(KOSPI)는 19.0% 상승한 반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1% 상승에 그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미국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승승장구한 반면 한국증시는 장기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나온 말이다. 최근의 흐름은 일시적 반전일까, 구조적 변화의 초기 국면일까.

후자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수익률의 평균회귀(Mean Reversion)’는 금융시장에서 자주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흔히 간과되곤 한다. 많이 오른 자산은 가라앉고 장기간 소외된 자산은 떠오르는 평균회귀를 주가의 자율 반락이나 자율 반등을 의미하는 기술적 분석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평균회귀는 무시로 나타나곤 하는 ‘시장의 비효율성’과 이후의 ‘정상화’ 과정을 의미한다. 훌륭해 보이는 자산에는 투자자들의 쏠림이 나타나면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고 흠이 많아 보이는 자산은 과도한 외면으로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미국 증시는 다시 역사적 고점 부근까지 상승하면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졌다. 6월9일 종가 기준 S&P500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은 22.8배에 달하고 있다. 1985년 이후 PER 20배 이상에서 S&P500지수에 투자했을 때 1년 후 성과는 연평균 0.3% 상승에 불과했고 3년 후 성과는 연율 -0.9%, 5년 후 성과는 연평균 -1.2%를 기록했다. 반면 코스피의 12개월 예상 PER은 9.8배 수준으로 여전히 저평가 권역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증시도 때로는 장기성과가 부진하던 국면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1969~1982년의 장기 박스권(S&P500지수 연평균 등락률 -0.4%)이 있었고 2000~2011년에도 미국 증시는 장기 횡보(S&P500지수 연평균 등락률 -2.8%)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증시가 보여준 두 차례의 장기 횡보 국면에서는 모두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가 매개가 된 달러 약세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현 상황과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과 미국증시의 장기 수익률 역전도 늘 나타났던 현상이다. 대개 10년 정도 주기로 인기와 소외가 교차했다. 1980년대는 한국증시 우위의 시대였다. 당시 미국증시도 1970년대의 장기 횡보를 딛고 연평균 +12.6%라는 초강세장을 구가했지만 1980년대의 주도시장은 동아시아 증시였다. 일본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신흥국들(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는데 당시 코스피의 연평균 상승률은 +24.7%였다.

1990년대는 미국의 시대였다.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블록 편입으로 냉전의 최종 승리자가 된 미국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IT) 혁명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반면 일본은 자산버블의 붕괴와 함께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게 될 장기침체의 초입에 접어들었고 한국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고성장에 종지부가 찍혔다. 1990년대 S&P500지수는 연평균 +15.3%에 달한 반면 코스피는 +1.2%에 불과했다.

2000년대는 중국이 중심이 된 신흥국의 시대였다. 한국도 중국경제 고성장의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 미국은 주택시장 버블이 붕괴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대 코스피의 연평균 상승률은 5.1%, S&P500지수는 -2.7%였다. 2010년대 이후로는 다시 미국이 부각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주도했다. 한국은 중국의 고성장이 일단락되면서 성장을 위한 새로운 활로를 찾지 못했다. 2009년 이후 2024년까지 S&P500지수는 연평균 11.7% 상승한 반면 코스피는 2.7%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증시는 이웃 일본이 지난 10년 동안 성공적으로 수행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첫발을 내딛고 있다. 장기간 주가가 횡보한 데 따라 밸류에이션 부담도 거의 없다. 반면 미국증시는 미래에 대한 과잉 낙관을 이미 주가에 투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한미 증시의 수익률이 역전되는 초기 국면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