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지난 1월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재권 분쟁 종료 합의문 내 불리한 조건이 알려진 여파로 해석된다. 합의문에는 한수원·한전 등이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 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맺고 1기당 1억 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는 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기업이 차세대 원전 기술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 등을 독자 개발해 수출하는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 분쟁은 지난해 7월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당시 체코 정부는 한수원을 두코바니 5·6호기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원천 기술을 도용했다”며 체코 정부 측에 진정을 냈다가 지난 1월 합의를 선언했다.
당시에는 상호 비밀유지 약속으로 타결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조단위 일감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관련 내용이 담긴 합의문이 이번에 공개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가 최소 1조원 이상을 챙길 수 있게 된다면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원전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남는 게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 조건이 한국 기업에 크게 불리한 조건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글로벌 원전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이어가는 대신 거래하는 편이 해외 수주를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기업이 모든 기자재를 조달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해 미국 기업에 일부를 배정하는 게 차선의 선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도 원전주의 성장 잠재력이 여전하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우수한 시공능력과 가격, 신뢰도를 갖춘 한국 원전 기업에 대한 글로벌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코리아원자력’, 신한자산운용, ‘SOL 한국원자력SMR’ 등 원자력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이날 동시 상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에 공개된 합의문과 관련해 “서방국가 입장에서 원전이 공급부족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보다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이미 다자간, 개별 협정에서 한국은 원전 수출 시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정 수준 불가피한 점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프로젝트 수주 때마다 미국의 제재 가능성이 낮아져 제3국 수출 확대 및 미국 원전 시장 진출이 가능해진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협력을 통한 한국 원전산업의 글로벌 진출 확대 전망은 변함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