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종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가 수행한 실험에서 챗GPT 4.1에 2024년 공인회계사 시험을 풀게 한 결과 1차 회계학 과목에서 90%, 2차 재무회계에서 51%의 득점을 기록했다. 회계사들에게 AI는 업의 존망이 달린 기회이자 위협이다.
회계학 교육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내외 회계학회는 분개 중심의 전통적 회계교육을 AI 기반 정형·비정형 데이터 활용을 골자로 하는 데이터 분석 교육과정으로 확대하고 있다. 국내 공인회계사 시험도 최근 개정을 통해 데이터 분석 역량을 별도로 평가하기로 했다. 기술의 진보가 회계역량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법인 또한 변화의 파고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를 통해 대량의 데이터 입력·가공과 같은 반복적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하며 머신러닝 기반의 분석 도구로 재량적 회계처리의 정합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삼일PwC는 올해 7월 AI 전문조직인 ‘AX 노드(Node)’를 신설했고 삼정KPMG는 10월 부동산·인프라·세무 분야의 역량을 결합한 ‘데이터센터 자문센터’를 공식 출범했다. AI와 데이터 기반의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회계 서비스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력의 재배치는 정해진 수순이다. 수습이나 초임 회계사가 맡아온 단순·반복적 업무는 조만간 자동화에 의해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인회계사는 단순히 회계정보의 정합성을 판정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과 기업의 맥락 속에서 ‘정보의 유용성’을 평가할 수 있는 인지적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불완전한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AI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 또한 갖춰야 한다.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과제의 목록이 길어졌다. 업계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 회계사들에게는 경력개발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계 서비스 수요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기적 지정제 등 감사제도 변화로 감사수요가 일시적으로 폭증하면서 공격적으로 인력을 늘렸던 일부 회계법인들에서 잉여인력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AI와의 상생을 위해 인적자원의 재배치를 모색해야 할 이 절체절명의 시점에 인적자원 수급에 구조적인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불거진 수습회계사 미지정 사태는 이 불균형의 필연적 결과다. 2025년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약 400명(전년 합격자 일부 포함)이 비자발적 미취업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이들이 회계법인에 입사하게 되면 2026년 합격자들의 입사기회는 그만큼 제한된다. 회계업계 전체의 인적자원 운영과 투자현황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회계라는 자본시장 인프라를 지탱하는 회계전문인력은 공공재다. 이 공공재를 어떻게 얼마나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 공공재를 과소하게 구축해도, 과다하게 구축해도 사회가 비용을 치른다. AI와 제도 변화가 초래한 미증유의 불확실성 속에서 공공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수급하는 일에 사회 전체의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