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이사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세미파이브는 고객이 ‘어떤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하고 와도 스펙 정의부터 설계·검증·양산, 후공정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맡을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이라며 “최적화된 ASIC을 더 싸고, 빠르고, 쉽게 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이사 (사진=세미파이브)
조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반도체 설계 전문가다. 첫 직장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전략을 자문하며, 기술적 한계로 범용 반도체보다 ASIC 수요가 늘어나리라고 판단했다. 이후 설계 효율성과 속도가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가 온다고 확신하며 세미파이브를 설립했다.
세미파이브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전통적인 디자인하우스 역할을 확장해 전통적으로 팹리스 사업자가 직접 수행하던 반도체 스펙 정의, 아키텍처 및 로직 설계부터 디자인하우스 영역의 레이아웃 디자인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생산 관리 및 후공정 업체(패키징·테스트) 영역까지 시스템 반도체 설계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원스톱 설계 플랫폼’을 구축했다.
세미파이브가 내세우는 가장 큰 강점은 ‘빅테크 레디’(Big-tech ready) 역량이다. 삼성전자 2나노(2nm)를 포함한 최선단 공정 기반 프로젝트 매출 비중이 이미 전체의 40%를 넘을 정도다. 국내·외 디자인하우스 중 이처럼 최선단 공정 경험을 다수 보유한 곳은 드물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초대형(Big-die) 칩 역량도 눈에 띈다. 세미파이브는 500㎟급 4나노 칩 테이프아웃(반도체 설계의 마지막 단계)에 성공했고, 글로벌 고객사와도 800㎟급 칩 위에 D램을 적층하는 3D IC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용 AI 칩에서 요구되는 발열·전력·신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영역으로, 글로벌 파운드리 생태계 내에서도 이를 구현하는 기업은 제한적이다.
설계 자동화·모듈화 기술 역시 강점이다. PCIe·LPDDR·HBM 등 고속 인터페이스와 주요 IP를 모듈화하고 테스트 코드·드라이버·매뉴얼까지 자동 생성하는 엔진을 구축해 개발 기간과 실패 위험을 크게 줄였다. 양산 칩에서 검증된 모듈을 재사용해 레퍼런스가 쌓일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구조다.
삼성전자와의 협력 관계도 차별점으로 평가받는다. 세미파이브는 삼성의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2나노 공정을 초기 단계부터 경험한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로서, 고객사에 선단 공정 기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삼성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 선단 칩 기반의 확실한 차별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세미파이브)
세미파이브의 지난해 매출액은 1100억원대를 돌파했다. 현재는 개발(NRE) 매출 비중이 절반 이상이지만, 최선단 공정 중심 대형 프로젝트들이 양산 단계에 진입하면서 앞으로 몇 년간 양산 매출이 본격적인 레버리지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 대표는 “양산 고객이 빠르게 늘고 있고, 해외에서는 실제 칩을 들고 가 설명하면 바로 계약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말했다.
세미파이브는 아직 적자 상태지만, 최선단 공정 기반 양산 비중을 늘리며 중기적으로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 특성상 초기엔 비용이 크게 들지만, 일정 규모의 양산 매출이 발생하면 이익률이 급격히 개선되는 구조다. 조 대표는 “선단 공정 양산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는 시기(2026~2027년)부터 손익이 안정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IPO는 글로벌 확장을 위한 자본 조달 성격이 강하다. 세미파이브는 우선 선단 공정 대응력 강화와 3D IC·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투자, 해외 고객 확대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 △프로젝트 수행 기반 강화를 위한 동남아 지역 엔지니어링 자원 확보 △최첨단 AI 반도체 기술 내재화를 위한 차세대 IP 기업 인수 등을 위해 활용될 예정이다.
조 대표는 “아마존이 전 세계 판매와 물류를 플랫폼 하나로 연결했듯, 세미파이브는 반도체 설계의 모든 단계를 하나로 통합해 고객이 스펙만 들고 와도 칩이 완성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상장은 첫 번째 챕터를 마무리하는 과정일 뿐, 앞으로는 글로벌 고객이 먼저 찾는 설계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 기술·인력·생태계를 더욱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미파이브는 지난달 코스닥 상장을 위해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세미파이브는 이번 상장에서 540만주를 공모하며, 희망 공모가는 2만 1000~2만 4000원이다. 총 공모금액은 1134억~1296억원이다. 기관 대상 수요예측은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진행하고, 12월 5~8일 일반 청약을 거쳐 연내 상장한다. 상장 주관사는 삼성증권, UBS증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