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환율방어 활용땐 독립성 훼손…日 연금 전철 밟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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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2월 03일, 오후 10:41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국민연금이 환율 대응 핵심 수단으로 동원될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투자정책전문위원회·기금운용위원회 일정이 잇달아 잡히면서 어느정도 수위로 활용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기금 운용지침 6대 원칙 중 지속가능성이나 운용 독립성은 언급하지 않은 만큼 환율 대응 전략을 수립할때 이 부분은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다. 특히 독립성은 수익률과 직결되는 요인이어서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10일 투자정책전문위원회를 열고 이번 달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상정될 투자정책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통상 투자정책위원회, 실무평가위원회가 마무리된 이후 수일 내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린다.

관가 및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정책위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및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 연장 세부 조건 관련된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투자정책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되는 안건 가운데 투자 정책에 관한 사안을 사전에 검토·심의하는 기구로, 중장기 자산 배분과 위험 관리, 성과 평가체계 등 핵심 운용정책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략적 환헤지나 환율 관련 대응 주요 결정은 기금위 의결로만 내릴 수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투자정책위에서 먼저 다룬다. 해외 자산의 어느 정도까지 환헤지를 허용할지, 발동과 중단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등의 세부 사항이 모두 투자정책위에서 정리된다.

주요 회의를 앞두고 국민연금 내에서는 여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아졌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대응의 주요 축으로 강하게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환율 대응을 위한 4자 협의체’를 만들고 지난달 24일과 30일 두 차례 속도감 있게 회의를 개최했다. 4자 협의체를 중심으로 한 환율 대응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함께 고려한 ‘뉴프레임워크(New Framework)’ 마련 논의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업계에서는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을 외환 대응에 적극 개입시키려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달 투자정책위와 기금위를 통해 환율 대응 전략을 바꿔놓으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기금운용지침 제4조의 6대 원칙 가운데 공공성과 유동성, 안정성, 수익성 등 4개 부문만 반복해 언급하고, 지속가능성과 운용 독립성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국민연금 운용지침 제4조는 수익성·안정성·공공성·유동성·지속가능성·운용 독립성 6개 원칙을 동등하게 규정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외환시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재하는 기금운용위에서 결정한 사항"이라며 "다만 기재부는 기금 운용위의 일원으로 국민연금의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이 조화롭게 고려되도록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정부가 선별적으로 거론한 원칙들은 국민연금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고, 기금 적립규모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국가경제 및 국내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시장 충격 최소화와 가입자 보호를 뜻하는 것이지 환율 대응 같은 정부 정책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왜 지속가능성과 독립성은 빼고 거론하는지 꼬집어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 개입으로 저수익 기조가 장기간 이어졌던 일본 연금의 사례를 돌아봐야 한다. 멀리갈 것도 없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건에서 이미 연금운용의 정치화와 활용의 폐단이 드러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환율 방어 명목으로 자산 배분을 흔드는 순간, 연금이 투자기관이 아니라 정책 도구화되는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공적연금 운용 체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 안정을 위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일본국채(JGB)와 국내 채권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했다. 이 여파로 장기간 저수익 구조가 고착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GPIF가 글로벌 투자기관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고 지금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이후 일본의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연금 운용을 개혁하면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같은 정부 기관 산하에서 독립권이 미약했던 GPIF가 개혁을 거쳐 독립성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지휘 권한을 보장 받으면서 자산 다변화와 해외투자를 본격화했다고 본다.

홍춘욱 프리즘 투자자문 대표는 "국민연금이 수익을 잘 내서 고갈 위험을 낮추었다고 칭찬한 것이 얼마전"이라며 "수익을 낸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해야하는데 왜 자꾸 개입하려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외환보유고가 상당히 늘었는데 외환보유고를 외환 시장에 투입한 징후는 찾기가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두고 구두 개입만 하면서 국민연금을 먼저 활용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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