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방패 역할론에…국민연금 외환시장 동원 초읽기

주식

이데일리,

2025년 12월 03일, 오후 10:40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외환시장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정부와 연금 당국이 환율 대응 방식 논의에 들어갔다. 국민연금의 전략과 장기 방향성을 결정하는 핵심 축인 투자정책전문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가 이달 잇따라 열릴 예정이어서, 전략적 환헤지·외환스와프 등 기존 운용기준의 조정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10일 투자정책전문위원회를 열고 기금운용위에 상정될 투자정책안을 논의한다. 투자정책위는 중장기 자산 배분·리스크 관리·성과 평가체계를 설계하는 기구로, 환율 대응과 관련된 구체적 운용 방식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정리된다. 실제 전략적 환헤지는 기금운용위원회 의결로만 발동되지만, 헤지 비중·기준·조정 방식은 투자정책위가 설계한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대응 협의체에 포함시키며 전략적 환헤지·외환스와프 등 역할을 잇따라 거론하는 만큼, 관련 안건이 이번 투자정책위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정부가 연금 역할을 계속해서 거론하는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외환 수급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는 인식이 있다. 지난 2010년만해도 300조원에 그쳤던 국민연금 적립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1361조2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해외주식·채권·대체투자를 합한 해외자산은 약 798조원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 4306억6000만달러(약 632조원)를 상회한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이 연간 평균 수십조원 규모의 상시적 달러 수요를 가진 순수 매수자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환율 영향을 줄이도록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고 본다.

최근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외환 대응 논의 과정에서 기금운용지침 제4조 6개 조항 중 일부를 선별적으로 언급한 점도 정부의 '연금 역할'에 대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구윤철 장관은 외환 대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기재부는 기금 운용위의 일원으로 국민연금의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이 조화롭게 고려되도록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기금운용 6대 지침 중 '지속가능성'과 '독립성'이 빠진 점을 연금의 환율 대응 역할 확대 가능성과 연결해 해석한다. 정책적 목적으로 연금 운용 개입이 과해지면 일본 공적연금의 과거 폐단이 국내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일본의 공적연금 체제는 정부 정책의 영향 아래 국내 채권과 자산 중심의 편중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며 저수익이 누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아베노믹스 시기에서야 연금의 독립성이 회복되고 글로벌 자산 배분이 허용되면서야 비로소 수익률이 개선됐다. 한국 역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연금의 정치적 활용이 남긴 부작용을 이미 경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에는 거시적인 요인이 더 강해 국민연금이 나서서 일시적 대응을 하더라도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으로 ‘수익성’에 대한 책임과 국가 경제의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이슈에서 딜레마에 빠졌다"며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자금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에 동원됐다가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비판은 매우 타당하기에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왑을 늘리는 등의 제한적인 수준에서만 역할을 하는 방향이 맞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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