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구멍 '비상장 주식' 제도권 품으로…20조 모험자본 ‘고속도로’ 만든다

주식

이데일리,

2025년 12월 22일, 오후 06:19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금융당국이 비상장주식 전자등록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초대형 증권사의 20조원대 모험자본 투자가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을 내놨다. 6년 만에 처음 허용되는 복수 전자등록기관 체제로 비상장주식 유동성 확보의 인프라가 확보되면서 벤처 생태계의 고질적 병목현상 해소가 기대된다.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
◇20조 모험자본, ‘출구’ 확보가 관건

금융위원회는 22일 ‘생산적금융 대전환 제3차 회의’를 열고 비상장주식 특화 전자등록기관 진입 허용과 대형 투자은행(IB)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동시에 발표했다.

최근 투자관리계좌(IMA) 지정을 받은 5개 초대형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키움·하나·신한투자증권)는 향후 3년간 15조2000억원을 추가 공급해 2028년말 기준 총 20조4000억원의 모험자본을 투입한다. 지난 9월말 기준 투자잔액 5조1000억원의 4배 규모다.

모험자본 투자의 최대 걸림돌은 출구 전략이다. 비상장 기업에 대한 대규모 모험자본 투자가 성공하려면 적절한 시점에 회수(exit)가 가능해야 하는데, 현재 비상장주식 시장은 주주명부가 수기로 관리되고 거래 인프라가 미비해 유동성이 극도로 낮다.

비상장 주식 등 비정형 증권의 전자등록 체계 구축이 정책 과제로 대두한 이유다. 주식 발행·양도·담보설정 등이 전자적으로 처리되면 세컨더리 거래가 활성화되고, 초대형 증권사가 투자한 비상장 기업 지분을 다른 기관투자자나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20조원 규모 모험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필수적인데, 비상장주식 유동성이 없으면 자금이 묶여 신규 투자 여력이 떨어진다”며 “전자등록 인프라는 투자 회수를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5개 증권사의 3년간 모험자본 공급 계획을 보면 직접투자와 간접투자가 4.5 대 5.5 비율로 구성된다. 직접투자는 중소·벤처기업 직접 자금공급(85%)과 구조화 금융(15%)으로, 간접투자는 투자조합(26%)과 정책펀드(74%)를 통해 이뤄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코스닥 시장 기관투자자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코스닥벤처펀드에 3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펀드는 코스닥 상장 전후 기업들에 투자하는데, 전자등록 체계가 갖춰지면 비상장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인 주주 관리가 가능해 상장 준비가 수월해진다.

또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투자비중이 27%(4조700억원)로 가장 높고, A등급 이하 채무증권(2조2000억원)과 중소·벤처기업 직접투자(2조원)가 뒤를 잇는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BDC와 코스닥벤처펀드는 비상장에서 상장으로 넘어가는 ‘브릿지’ 역할을 하는데, 전자등록이 활성화되면 비상장 단계 주주들의 엑시트 경로가 다양해져 초기 투자 유인이 커진다”며 “결과적으로 모험자본의 선순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전자등록도 경쟁체제로 “예탁결제원 한계 돌파”

금융위는 2019년 전자증권법 시행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전자등록기관 진입을 허용한다. 현재 한국예탁결제원이 단독으로 운영 중이지만, 상장주식·채권 등 정형화된 대규모 시장에 집중하면서 비정형·비상장 주식의 전자등록률이 저조했다.

4만여개 벤처기업 중 예탁기업은 1100여개, 전자등록 기업은 300여개에 불과하다. 발행규모가 적고 회사 수가 많은 비상장 시장 특성상 예탁결제원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상장주식 맞춤형 전자등록이 활성화되면 거래·관리의 투명성과 편의성이 제고되고, 낮은 법적 안정성으로 인한 거래 저해 요인이 제거될 것”이라며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모험자본 공급 규모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자금이 흐르는 파이프라인’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금융위는 2026년 상반기 중 법무부 등 관계부처·기관과 함께 구체적인 허가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전자증권법령을 보완해 2026년 하반기부터 허가 설명회 등 절차를 진행한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자본시장은 미래 가능성을 선별해 위험을 감내하고 장기적 성장에 투자하는 만큼 가장 생산적인 금융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생산적금융이 금융회사의 업무나 투자대상 변화에 그쳐서는 안 되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속도감 있게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벤처기업협회장, 코스닥협회장, 금융투자협회장, 벤처캐피탈협회장,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5개 초대형 증권사 대표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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