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장중 5000p를 넘으며 개장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국 주식시장은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시작됐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가 주식시장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다.
당시 상장사는 12개뿐이었다.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을 비롯해 은행 4곳(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과 일반기업 6곳(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에 불과했다.
상장사는 1973년 100개를 넘었다. 현재는 유가증권시장 844개사·코스닥 1824개사 등 2781개사로 늘어났다.
거래소 문을 열었던 상장사 대부분은 사라졌다.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은 각각 1974년 6월과 11월에 상장폐지됐다. 4개 은행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두 상장폐지 되며 증시를 떠났다.
경성전기와 남선전기는 조선전업과 함께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1961년 6월 상장사 명단에서 사라졌다. 조선운수는 대한통운의 전신인 한국미곡창고에 합병돼 1962년 1월 상장폐지 됐다.
대한해운공사와 조선공사는 한진그룹에 넘어가 각각 한진해운과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고, 한진해운은 법원의 파산 선고로 2017년 상장폐지됐다. 경성방직은 1970년 경방으로 변경해 여전히 증시에서 거래 중이다.
개장 첫해 150억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4660조원까지 불어났다. 코스피가 4133조원, 코스닥이 527조원 수준이다. 코스피만 따지면 지난 1월 16일 4000조원을 처음으로 넘었다.
한국 주식시장 기반을 마련한 것은 정부가 19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1961년 4억원에 불과했던 주식거래 대금은 이듬해 1000억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 주식시장의 첫 위기는 1962년 5월 증권 파동 때다.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노린 투기세력으로 인해 거래소가 지급 불능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정부가 시장을 되살리고자 1968년 자본시장육성 특별법과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등을 제정하면서 1970년대엔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뤄졌다.
2026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사진=김태형 기자)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산출됐다. 이후 1989년 3월 31일 1000을 돌파했다.
1980년대는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가·금리·달러 등 이른바 ‘3저 효과’와 국민주 보급 등에 힘입어 주식 대중화가 진행된 시기다.
1992년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전면 허용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이듬해 6월 16일 277.37까지 추락하고 굵직한 기업이 줄줄이 상장폐지됐다.
이후 정보기술(IT) 투자 열풍을 바탕으로 반등해 1999년 1000선을 되찾았지만, IT 거품 붕괴와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과 9·11테러로 다시 400선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2007년 7월에는 경제 회복과 펀드 투자 열풍 등에 힘입어 200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1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세계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2500선을 넘긴 코스피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촉발한 미중 무역갈등 등 여파로 다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1500선까지 추락했다가 ‘동학개미운동’과 전 세계 초저금리 정책에 따른 경기 부양 기조로 다시 급반등해 2021년 1월 3000선에 도달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여파 등으로 2399.49로 종가를 찍은 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 기대로 분위기가 반전되며 급반등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 6월 3000을 재차 넘어섰으며 10월 27일 4000선에 진입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코스피는 무려 75.9% 오르며 전세계 증시 수익률 1위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