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사는 ‘0표 전략’…집중투표제 활용한 ‘배제’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전날 제5차 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 등 13개사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다. 오는 24일 열리는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선 최윤범(사내이사), 황덕남(사외이사), 박병욱(기타비상무이사) 후보에게는 ‘미행사’를, 김보영·이민호(감사위원) 후보에게는 ‘반대’를 결정했다.
국민연금이 최 회장 등 후보 3인에 대해 결정한 미행사는 단순한 기권이 아니다. 이번 주총에 도입된 집중투표제의 특성을 활용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특정 후보에게 단 한 표도 주지 않으면서, 나머지 주주제안 후보들에게 의결권을 집중시켜 실질적인 선임 저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합작법인(Crucible JV) 측 후보인 월터 필드 맥라렌(Walter Field Mclallen)과 최연석·최병일·이선숙 등 나머지 후보 4인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균분해 행사하기로 확정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이사회 구성원의 인적 쇄신을 강하게 요구하는 능동적인 배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관변경 다수 찬성…의장 교체 포석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국민연금이 ‘주주총회 의장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 등 지배구조 관련 안건에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비록 이번 주총에서 즉각적으로 의장이 교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최 회장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힘을 실어준 셈이다.
국민연금은 이외에도 △신주 발행 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이사회 소집 절차 변경 △집행임원제도 도입 등 경영진의 권한을 분산하고 감시를 강화하는 정관 변경 안건들에 모두 찬성 결정을 내렸다. 이는 현재의 이사회 운영 방식에 명확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정관 변경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2 이상의 찬성과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5.2%이므로, 국민연금의 찬성만으로는 부족하며 다른 주요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때 변수는 출석 주주의 모수에 있다. 그동안 최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됐던 주요 대기업들이 경영권 분쟁 리스크를 우려해 주총에 불참하거나 이탈할 경우, 예상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면 이후에 열리는 임시 주총이나 내년 정기 주총부터는 개정된 정관에 따라 새로운 인물이 의장석에 앉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후보들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국민연금의 이번 행보가 고려아연 주총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