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는 실패하며 크는 산업…몰빵 보단 '분산투자'를”[인터뷰]

주식

이데일리,

2026년 6월 23일, 오전 07:07

[이데일리 신하연 기자] “바이오는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산업입니다. 신약 개발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훨씬 큰 영역이고, 그 시행착오가 쌓여야 기업도 산업도 성숙해집니다. 그래서 투자 역시 특정 기업에 ‘몰빵’하기보다 산업 전체의 성장 가능성에 분산해서 접근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1987년부터 40년 가까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분석해온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상무)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국내 바이오 산업의 현재 위치를 이렇게 진단했다. 하 연구원은 SK증권(당시 태평양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제약·바이오 섹터 분석을 시작해 현재까지 제약·바이오, 화장품, 헬스케어 분야를 지키고 있는 베테랑 애널리스트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상무보).
◇“K바이오, 시행착오 거쳐 결실의 시기 진입”

하 연구원은 한국 바이오 산업이 시행착오를 거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춰가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여 년간 축적한 경험이 최근 들어 하나둘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1990년 이전만 해도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복제약)이나 해외 의약품 도입 영업 중심이었지만, 1987년 물질특허제도 도입 이후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개발(R&D) 투자가 본격화됐다”며 “2000년대 이후 물질 개발과 전임상, 초기 임상을 거치며 시장 전체가 값비싼 수업료를 냈고,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성공 사례들이 등장하는 결실의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세계적인 신약 개발 강국과 비교하면 초기 단계지만 한국에서도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며 “20년 이상의 신약개발 과정을 지켜보면서 투자자들의 이해 수준 역시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느낀다”고 평가했다.

그가 꼽은 성공한 바이오 기업들의 공통점은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 연구원은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기업들은 초기부터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타깃을 선정해 개발했다”며 “특히 오너가 기술과 사업화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직접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기업들에 대해서는 임상 실패 자체보다 소통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신약 개발은 본질적으로 실패 확률이 90%를 넘는 영역”이라며 “실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을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는 플랫폼 기술 기반 바이오 기업들에 대해서는 보유 현금이 부족한 한국 바이오 산업의 현실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하 연구원은 “플랫폼 기술은 초기 임상 단계에서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수출(L/O)을 할 수 있어 자금 부담이 적고 실패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낮다”며 “유효성이 검증되면 후속 파이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플랫폼 기술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직접 신약 개발에 나서는 병행 모델도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대규모 임상 3상이 필요한 만성질환 신약은 여전히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기술수출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공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게 하 연구원의 판단이다. 그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블록버스터 신약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며 “그런 기업이 등장하면 우수한 인재들이 산업으로 유입되고, 이를 본 후발 주자들이 다시 도전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별 종목보단 산업 성장에 분산투자해야”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바이오 산업에 대한 장기적 관심은 유지하되 투자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 연구원은 “신약 개발 최종 성공 확률은 사실상 1~2% 미만으로 그만큼 위험이 큰 분야”라고 짚었다.

이어 “철저히 공부해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할 자신이 없다면 검증된 바이오 기업들을 묶어 바스켓 투자를 하거나 바이오 펀드, 바이오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며 “종목보다 산업의 성장성에 투자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투자의 난도가 높은 배경으로는 공시와 정보 비대칭 문제를 짚었다. 특히 최근 삼천당제약(000250) 사례에 대해서도 특정 기업만의 문제라기보다 국내 바이오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오 기업들은 자체 현금 창출력이 부족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의존도가 높고, 긍정적인 뉴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며 “우리 시장은 아직 FDA 승인까지 이어지는 신약 개발 전 과정을 충분히 경험한 사례가 많지 않아 임상과 허가, 기술계약 관련 이슈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정보 왜곡이나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보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시장 역시 관련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정보 비대칭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바이오 산업에 특화된 공시 관리 체계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주요 공시와 발표 내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허용하는 생태계의 전제 역시 투명한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하 연구원은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실패하더라도 축적된 기술로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글로벌 사례가 많다”며 “시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기회를 주고, 설득에 실패하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구조가 건강한 생태계”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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