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2일 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 대비 16.1% 늘어난 501조4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퇴직연금 전체 수익률은 6.47%로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증시 활황과 가입자들의 적극적인 운용에 따른 결과다.
퇴직연금의 중심축도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에서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DC형(28.2%)과 IRP(26.1%) 합산 비중은 54.3%로 DB형(45.7%)을 앞질렀다. 퇴직연금 운용 주체가 기업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가입자의 투자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운용 방법별로는 실적 배당형이 23조3000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24.6%를 차지했다. 실적 배당형은 펀드나 회사채 등 원금을 보호받지 못하지만 기대 수익률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형태다. 여전히 대다수 적립금(378조1000억원)이 예금과 보험, 국채 등에 투자하는 원리금 보장형에 쏠려 있지만 그 비중은 2023년 87.2%에서 지난해 75.4%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현행 70%에서 100%로 확대하면 실적 배당형 상품 비중이 늘어나고 수익률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실적 배당형 수익률은 2024년 9.96%에서 지난해 16.8%로 상승했다. 반면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된 퇴직연금의 경우 지난해 수익률이 3.09%로 전년(3.67%)보다 하락했다.
◇위험자산 한도 우회로 찾는데…규제 실효성 낮아
이미 가입자들은 70% 한도를 넘어 위험자산 투자를 늘리기 위해 채권혼합형 ETF와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우회로를 찾고 있다. 주식과 채권을 절반씩 담은 채권혼합형 ETF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돼 연금 계좌에서도 100% 편입 가능하다. 가입자가 위험자산 투자 한도인 70%를 주식형 ETF로 채우고 나머지 30%를 채권혼합형 ETF로 담으면 전체 주식 투자 비중을 최대 85%까지 높일 수 있다.
연금 계좌 내 투자 수요가 늘면서 주식·채권 혼합형 ETF 순자산총액은 2023년 말 8000억원 수준에서 현재 20조8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투자액도 증가세다. 지난해 말 48조7000억원으로 3년 연속 매년 100%대 증가율을 보였다.
TDF도 마찬가지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하는 펀드다.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등 조건만 충족하면 ‘적격 TDF’로 인정돼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투자할 수 있다. 계좌 내 70%를 주식형 상품으로 채우고 나머지를 주식 비중이 80%인 TDF로 채우면 전체 위험 자산 비중이 94%까지 높아진다.
투자자들이 규제를 우회하고 있는 만큼 현행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사실상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위험자산의 규모를 줄이는 방식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투자 위험을 관리하려면 특성이 다른 위험자산을 여러 개 섞어 위험이 분산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이다. 실제 연금 선진국 가운데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구분하는 곳은 없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상무는 “위험자산에 70% 이상 투자하고자 하는 가입자 수요가 많고 이미 우회 투자도 널리 공유되는 상황”이라며 “관련 규제를 없애 편법 없이 투자하고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