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500조원 시대…운용사 지분은 늘었는데 주주권 행사는 ‘제자리’

주식

이데일리,

2026년 7월 14일, 오전 10:33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50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자산운용사가 개별 기업과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보유 지분 확대에 비해 기업과의 대화나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책임 활동은 충분히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ETF 시장의 성장으로 자산운용사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 보유 지분이 증가하고 있지만, 수탁자책임 이행의 한계로 기업 지배구조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표=자본시장연구원)
(표=자본시장연구원)
국내 ETF 시장의 순자산은 2023년 6월 100조원을 넘어선 뒤 2025년 5월 200조원, 같은 해 12월 300조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5월 말엔 500조원을 웃돌았다. 올해 들어서만 지난해 말보다 71% 증가했으며, 국내 주식형 ETF가 전체 순자산의 48%를 차지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ETF의 증시 내 비중도 구조적으로 확대됐다. 전체 증시 시가총액에서 ETF 순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말 2.2%에서 2025년 말 7.5%로 높아졌다. 자산운용사가 보유한 국내 주식 잔액도 2020년 말 100조원 수준에서 2025년 말 206조 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시가총액 가중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성장하면서 대형주에 대한 자산운용사의 영향력이 커졌다. 올해 5월 말 국내 상장 ETF가 편입한 삼성전자(005930)는 53조 1000억원으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2.9%, SK하이닉스(000660)는 57조 9000억원으로 시가총액의 3.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초 대비 편입액은 각각 248%, 145% 늘었다.

ETF는 설정과 환매 과정에서 기초지수 구성 종목으로 이뤄진 현물 바스켓을 직접 주고받는다. 이에 따라 ETF 규모가 커질수록 리밸런싱 과정에서 대형주에 대한 매수와 매도가 일괄적으로 반복되며 수급과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운용사의 주주권 행사 역량은 보유 지분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 참여 기관과 의결권 행사율은 늘었지만, 이행 여부를 검증할 체계와 통합 공시 기반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실제 점검 대상 운용사의 42.4%는 의결권 행사 사유의 절반 이상을 ‘주주총회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거나 ‘주주권 침해가 없다’는 식의 형식적인 내용으로 기재했다. 공모 자산운용사 67곳 가운데 주주권 행사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18곳에 그쳤고, 나머지 49곳은 운용·리서치나 후선 부서가 관련 업무를 겸임했다.

주요 안건을 심의하는 별도 의사결정기구를 둔 운용사는 40곳이었으며, 나머지 27곳은 담당 운용역이나 운용본부장이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했다. 수탁자책임 활동 실적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한 운용사도 20곳에 불과했다.

해외 대형 자산운용사는 패시브펀드를 통해 확보한 대규모 지분을 토대로 기업과 지속해서 대화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활용한다. 블랙록은 2025년 42개국에서 2373회의 기업 관여 활동을 진행했고, 1만 6500회 이상의 주주총회에서 15만 4000여개 안건에 투표했다. 뱅가드도 같은 해 1542회의 기업 관여와 1만 3432회의 의결권 행사를 수행했다.

국민연금과 금융당국도 운용사의 책임 있는 주주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의 수탁자책임 체계와 이해상충 관리,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 등을 평가해 자금 배정과 회수에 반영하고 의결권 위임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패시브펀드를 통한 대규모 지분 보유에 상응하는 기업 관여와 의결권 행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전담조직과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투자·리서치 조직에서 독립된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 수탁자책임 활동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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