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캐리 청산 공포 확산…韓증시 폭락 재현될까

주식

이데일리,

2026년 8월 22일, 오후 02:18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낮은 금리로 빌린 엔화를 미국 등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과 미국·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빠르게 오르면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팔고 엔화를 사들여 빚을 갚는 과정에서 국내 증시까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단기간에 크게 좁혀질 가능성은 낮아 지난 2024년 8월과 같은 대규모 청산 사태가 당장 재현될 가능성은 비교적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22일 한국금융연구원이 발간한 ‘일본 통화정책 기조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HSBC는 전 세계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규모가 1조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 표시 자산에 투자해 금리 차이에서 수익을 얻는 전략이다. 일본과 투자 대상국의 금리 차이가 크고 엔화 약세가 이어질수록 유리하다. 시장 변동성이 낮아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반대로 일본 금리가 오르거나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빌린 엔화의 달러 환산가치가 커져 상환 부담이 늘어난다. 이에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팔고 엔화를 사들여 빚을 갚으면서 자산가격 하락과 엔화 강세가 서로를 부추기는 연쇄 청산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에는 엔캐리 트레이드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비상업적 엔화 선물 순매도 포지션도 2024년 충격 당시 수준에 가까워졌다.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2025년 5월 이후 빠르게 증가해 지난달 28일 기준 16만3000계약을 기록했다. 지난 2024년 7월의 18만4000계약에 육박하는 규모다.

엔캐리 투자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16일 정책금리를 1%로 올리고 추가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 정책금리가 1%에 도달한 것은 1995년 이후 31년 만이다.

미국과 일본이 엔화 가치 방어에 함께 나선 점도 변수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31일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일본 재무성과 공조 개입을 단행했다. 미국이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개입 직후 엔·달러 환율은 불과 한 시간 만에 달러당 162.8엔에서 157.8엔으로 약 5엔 떨어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엔화 약세를 시정하기 위한 추가 공조 개입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증권거래소 내 닛케이225 상장 종목 주가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온통 하락을 뜻하는 파란색을 띄고 있다. (사진= AFP)
도쿄증권거래소 내 닛케이225 상장 종목 주가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온통 하락을 뜻하는 파란색을 띄고 있다. (사진= AFP)

엔화 강세가 국내 금융시장에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원화와 엔화는 가치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엔화가 오르면 원화 가치도 동반 상승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 문제는 엔화 강세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다. 엔캐리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글로벌 자산가격이 조정받고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 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실제 지난 2024년 8월에는 일본은행의 예상보다 강한 금리 인상과 미국 고용지표 부진이 맞물리면서 엔캐리 포지션이 급격히 청산됐다. 같은 해 8월5일 일본 토픽스지수는 12% 떨어졌고 엔·달러 환율은 5거래일 만에 5.2% 하락해 달러당 145엔까지 내려갔다.

국내 시장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같은 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8.8%, 11.3% 폭락했고 두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발동됐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1359.0원에서 1375.1원까지 크게 출렁였다.

금융연구원은 현재로서는 당시와 같은 대규모 청산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고 진단했다. 일본은행이 2024년의 충격을 의식해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일본의 재정건전성 우려로 엔화가 단기간에 급격한 강세를 보일 가능성도 제한적이라는 이유다.

미국의 견조한 민간소비와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점도 미·일 금리 차이의 급격한 축소를 막는 요인이다.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대형 기술기업의 인공지능(AI) 투자와 자금 조달 수요도 미국 등 주요국 금리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금융연구원은 예상 밖의 통화정책이나 외환시장 개입이 엔캐리 청산을 촉발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엔캐리 자금의 움직임과 이에 따른 국내 자산가격 조정, 외국인 자금 유출입을 면밀히 살피고 시장 예상과 다른 주요국 통화정책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평가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