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신자들이 향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사진=로이터)
25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오는 26일 오전 10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에 50개국 정상과 10개국 군주를 포함한 130여개 외국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참석이 확인된 주요 인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장남 윌리엄 왕세자 등이다.
전·현직 정상들이 대거 집결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불참 의사를 밝힌 점은 바티칸에 일종의 안도감을 주는 분위기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교황 장례식은 단순한 종교적 의례를 넘어 세계 외교의 중심 무대가 될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하는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한 ‘좌석 외교’도 주목된다. 정상 간 앞자리 배치와 의전상의 거리 등은 국가 간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티칸은 이를 예의주시하며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다.
장례식은 오전 중 거행되기 때문에 다수 국가 정상들은 전날 밤 로마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짧은 시간 동안 회동이나 비공식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5년 4월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이 옆으로 나란히 서 있다. (사진=AFP)
실제 200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올해의 외교적 사건”으로 불렸다. 평소에는 같은 국가는 물론 같은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 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의 여진 속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시리아·쿠바 정상들과 같은 구역에 앉았고, 부시 대통령의 얼굴이 대형 야외 텔레비전 모니터에 비치자 일부 관중석에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또 찰스 영국 국왕(당시 왕세자)은 유럽연합(EU)의 입국 금지를 피해 참석한 로버트 무가베 당시 짐바브웨 대통령과 악수해 외교적 논란에 휘말렸으며 이후 성명을 통해 “현 짐바브웨 정권이 혐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도 예기치 못한 외교적 조우와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교황청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프란시스 캠벨은 “이번 장례식에는 매우 흥미로운 역학관계가 형성될 무대”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바티칸 당국은 수십만 명의 군중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례식 당일을 대비해 성 베드로 대성당 일대를 특별경계구역으로 지정했다. 무인기(드론) 비행 금지와 저격수 배치, 공군 전투기 대기 등 삼엄한 경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바티칸의 외교 관계도 주목되는 가운데 대만 측에서는 천젠런 전 부총통이 특사로 참석할 예정이다. 바티칸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수교 중인 국가로, 중국과는 1951년 단교 이후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중국 측이 공식 조문단을 파견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