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7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하버드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국제 유학생을 위한 자유를 지지하는 하버드 학생 집회(Harvard Students for Freedom)’ 도중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AFP)
◇닛케이 “홍콩, 中정부 의지 아래 유학생 유치 선봉대”
가장 적극적인 것은 홍콩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홍콩 주요 대학들은 잇따라 유학생 유치 전략을 발표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홍콩 국립대학인 홍콩과학기술대학교(HKUST)는 이미 하버드대 유학생 수십 명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주로 중국 본토와 홍콩 출신 유학생 및 입학 예정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치 발표 이후 홍콩과기대는 “유학생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며 편입 절차 지원과 학생 생활 지원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하버드대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대학에서 학업 중인 우수 학생들도 받아들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버드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미국 내 다른 학교로 확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홍콩대학교도 하버드대 유학생 및 연구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편입 시 장학금과 학점 인정 등의 우대 조치를 제안했으며 홍콩이공대는 장학금 제공 및 편입 수속을 위한 특별팀을 구성할 방침이다. 홍콩 당국도 대학들의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독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홍콩 정부 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같은 달 27일 “미국에서 차별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학생들이 홍콩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유학생 정원 확대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닛케이는 홍콩 당국이 적극적으로 유학생 유치와 지원에 나선 것은 중국인 학생 보호를 넘어서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시진핑 지도부는 ‘자립자강(스스로 서고 스스로 강해진다)’ 노선을 내세우며 우수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 유학 중인 최우수 인재의 귀환은 시진핑 지도부의 중점 과제 중 하나로, 홍콩이 이런 인재를 흡수하는 선봉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중국 내 통제강화와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중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혼란은 두뇌 유출을 막을 기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대학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영어로 교육 및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상위 100위 세계대학 중 5개가 포진돼 있다.
◇프랑스·독일·일본도 유치전…FT “英 더욱 적극적이어야”
이 같은 흐름은 홍콩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인 다른 국가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글로벌 ‘두뇌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정부의 하버드대학교 국제 학생 등록 금지 조치에 대응해 이들을 위한 ‘망명 캠퍼스(Exile Campus)’를 제안했다. 볼프람 바이머 독일 문화부 장관은 “독일은 교육과 다양성을 중시한다”며 “미국에서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기꺼이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임시 대응이 아니라 독일이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주요 대학들도 미국발 유학생 이탈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교토대학교는 27일 “미국에서 학업이 어려워진 유학생과 젊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수용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젊은 연구자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수용 계획도 병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후지이 데루오 도쿄대 총장은 “하버드대에서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유학생이 발생할 경우, 이들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이를 위해 2025년도 중으로 관련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오사카대, 도호쿠대, 규슈대 등 일본의 주요 국립대학들도 유학생 수용 확대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오사카대는 “미국 내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논의하고 있다”며, 유학생 지원 방안을 6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규슈대는 “전향적으로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도호쿠대도 “단기 및 중장기 수용 계획을 다각도로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민자와 유학생에 대해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영국 정부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른 나라에 비해 소극적인 영국 정부의 노력을 지적하며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서 쫓겨난 인재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서두르는 상황에서 영국도 손해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유학생들이 영국으로 이주하는데 드는 비용, 교수·과학자·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신속한 비자발급, 제약·생명공학·항공우주·엔지니어링 등 영국 산업 전반에 걸친 민간 부문의 마케팅 강화 등을 권고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5월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막으려 했던 시도가 법원 판결로 제지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이처럼 각국이 적극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나서는 이유는 이들을 ‘인재’로 보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6%이나 미국 내 가장 선별적인 158개 연구 중심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 비율은 14%로 전체 평균의 2배 이상이다. 특히 아이비리그와 스탠퍼드, MIT 같은 소위 ‘아이비 플러스(Ivy-plus)’ 대학 12곳에서는 이 비율이 28%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대상이 된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는 국제학생 비율이 40%, 28%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대학재정을 채워주거나 음식, 서비스, 의료 등을 소비하며 미국경제에 소비자로서 기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 비즈니스, 혁신 분야에서 미국의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살다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디지털 결제회사 스트라이프를 공동 창업한 패트릭과 존 콜리슨 형제는 각각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와 하버드에 진학하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10억달러 이상 가치의 스타트업 절반 이상은 최소한 한 명의 이민자 창업자가 있으며, 4분의 1은 유학생 출신 창업자를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