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 3월 17일 중국 동부 장쑤성 롄윈강 항구에서 수출 차량들이 선박에 적재되기 전 도킹되어 있다.(사진=AFP)
◇“6월 중순 희토류 고갈 가능성”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포드는 5월 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익스플로러’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6월에 생산을 재개하면서 생산 중단을 일시적인 영향에 그쳤지만 미중 간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글로벌 공급망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셰리 하우스 포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4일(현지시간) 투자자 행사에서 “중국에서 수출되는 희토류는 수출 규제를 통과해야 하며, 행정 절차가 늘고 있다. 장기화된다면 대체 부품이나 대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대형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공급업체들은 희토류 소재 자석을 사용한 자동차용 전기모터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거나 미국에서 제조된 미완성 모터를 중국으로 보낸 뒤 희토류 자석을 부착해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조시설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겠다며 무역전쟁을 개시했는데 이런 의도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셈이다.
미국뿐만 아니다. 유럽자동차부품산업회(CLEPA)는 이날 중국 정부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부품 제조업체의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조업을 멈춘 업체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CLEPA에 따르면 4월 초부터 자동차 부품업체가 제출한 수출 허가 신청 수백 건 중 단 25%만 승인됐으며, 일부는 “지나치게 절차적인 사유”로 거부됐고 한다. CLEPA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장 및 생산 라인의 조업 정지가 잇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도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제한으로 인해 독일 내 자동차 생산이 지연되거나, 경우에 따라 생산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고 공식 경고했다. VDA가 생산 중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힐데가르트 뮐러 VDA 회장은 로이터 통신에 “상황이 조속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생산 차질과 중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일부 공급업체는 중국으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았지만, 전체 공급망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요르그 부어처 메르세데스-벤츠 생산책임자는 주요 공급업체들과 함께 재고 확보 등 ‘버퍼’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희토류 부족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BMW는 일부 공급망이 차질을 빚었으나 자사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 베릴스 바이 알릭스파트너스의 파트너인 크리스티안 그림멜트에 따르면, 일부 공급업체는 수출 허가 제도가 발효되자, 새로운 규제 하에서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주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컨설팅 회사 알릭스 파트너스 역시 중국의 수출 허가가 재개되지 않을 경우 “유럽 및 미국의 1차 부품 제조업체의 희토류를 사용한 부품 재고가 6월 중순까지 고갈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희토류 규제로 생산을 중단한 업체가 나왔다. 닛케이에 따르면 스즈키는 소형차 대표 모델인 ‘스위프트’에 대해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6일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닛케이는 토요타나 혼다 등의 미국 완성차 공장 생산이 아직 중단되지 않았지만, 향후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혼다 미국법인은 “(희토류를 사용하는) 부품 제조업체와 재고 확보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시진핑 통화 해결 실마리될까…트럼프 “협상 어려워”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4일 자동차·항공우주·반도체·군수산업 등 글로벌 핵심 산업에서 필수적인 희토류 7종에 대해 중국 밖으로 반출하려면 특별 수출 허가를 받도록 했다. 7종은 전기차용 자석 등에 첨가되는 디스프로슘, 코발트 자석에 쓰이는 사마륨, 조영제로 사용되는 가돌리늄, 형광체 원료 테르븀, 방사선 치료에 쓰이는 루테튬, 항공기 부품 등에 사용되는 스칸듐, 고체 레이저 제조용 이트륨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는 가운데, 미국을 겨냥한 보복조치다. 다만 이 조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후 미중은 지난달 12일 제네바에서 관세를 115%포인트씩 각각 인하하기로 합의했지만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는 아직 풀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 등 일부 업체 등을 대상으로 희토류 수출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그 속도는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때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했던 미중 갈등은 다시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며 반발했고 중국은 오히려 합의를 위반한 것은 미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합의 이후에도 △인공지능(AI) 칩 수출 통제 가이드라인 발표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판매 중단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등 대중국 차별조치를 계속 했다는 것이다.
희토류는 중국 외 대체 공급처는 거의 없다. GM, BMW, ZF, 보그워너 등은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희토류 사용량이 적거나 없는 모터를 개발 중이지만, 생산을 확대해 비용을 낮춘 사례는 많지 않다. BMW는 최신 전기차에 자석 없는 전기모터를 도입했지만, 와이퍼나 창문 롤러 같은 부품용 소형 모터에는 여전히 희토류가 필요하다.
희토류 수입업체 노블 엘리먼츠의 대표 안드레아스 크롤은 “향후 3년간 중국과 협의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며 “중국은 전 세계 중 희토류 생산의 거의 99.8%를 통제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는 사실상 실험실 수준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상무부에 수출 허가 절차를 신속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중국 상무부와 회담을 위해 6월 초 대표단을 보낼 예정이며 유럽 국가들의 외교관들도 최근 몇 주 동안 중국 관료들과의 ‘긴급 회의’를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국 역시 정상과의 통화를 통해 희토류 수출 규제 조치를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서 “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좋아하고, 언제나 그랬으며, 항상 그럴 것”이라면서도 “그는 매우 힘들고(tough), 협상하기에 극도로 어렵다”고 게시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에너지자원 담당 차관보이자 현대 광물 산업 컨설턴트는 프랭크 패넌은 “이런 사태는 예견된 일”이라며 “미국은 전방위 정부 차원의 자원 확보와 국내 역량 확대가 시급하다. 시작했어야 할 시점은 이미 ‘어제’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