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한 주류 매장에서 레미 마틴 코냑 고급 샴페인 한 병이 보인다.(사진=AFP)
7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프랑스 코냑 브랜드 ‘레미 코앵트로’는 미·중 무역 불확실성과 미국 내 수요 부진 등을 이유로 매출 목표를 철회했다. 앞서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등 주류 브랜드도 같은 조처를 했다.
레미 코앵트로는 성명에서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과 미·중 간 관세 정책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 미국 시장의 회복 지연 등으로 인해 기존 2029~2030년까지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한 여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레미 코앵트로의 간판 브랜드 ‘레미 마르탱’을 포함한 코냑 사업은 미국 소비 부진과 중국 시장 내 ‘복합적 시장 조건’의 영향을 받아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대표적 프랑스산 브랜디인 코냑은 미·중 무역 갈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코냑 브랜드인 ‘헤네시’의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내 약 30억 달러(약 4조원)규모의 코냑 산업을 포함한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20%의 전면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영향이다.
고급 와인과 증류주는 대체로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 및 병입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어 현지 생산 후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미국의 수입 관세 정책에 더욱 취약하다. 일례로 샴페인은 반드시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제조돼야만 한다.
UBS의 산지트 아우즐라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고유의 생산 특성에 기반을 둔 주류 제품은 현지 생산, 해외 수출 구조이기 때문에 지정학적 긴장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레미 코앵트로는 현재의 관세로 인해 약 6500만 유로(약 1008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디아지오는 자사 사업 중 약 25%가 관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맥주는 대부분 현지에서 제조되는 탓에 관세 영향을 덜 받아 무역 분쟁의 의외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AB인베브, 하이네켄, 칼스버그 등 대형 맥주 제조사들은 올해 1분기에도 연간 전망을 유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주류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급증했다. 레미 마르탱, 존니워커 등 고가 브랜드가 특히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소비자들은 100달러(약 14만원)짜리 고급 주류보다 저렴한 즉석 음료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제퍼리스 보고서에 따르면 보드카·럼 등의 수요는 크게 줄었고, 위스키·테킬라·진 같은 프리미엄 제품군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제퍼리스는 “누적된 인플레이션과 저가형 주류의 부상이 증류주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고 짚었다. UBS의 아우즐라 애널리스트는 “이전까지는 프리미엄화가 트렌드였지만, 현재는 경기순환적 악재로 일시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 증가도 주류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절주에 관심 있는(소버 큐리어스) 소비자들이 늘면서 많은 주류 기업들이 무알콜·저알콜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주목받는 GLP-1 계열의 위고비 등 체중감량 치료제가 음주욕구를 억제한다는 초기 연구 결과도 주류 소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수요 위축이 일시적 경기 사이클의 영향인지, 구조적인 변화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RBC 캐피탈마켓의 제임스 에드워즈 존스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수요 침체가 경기 순환적 요인인지, 구조적 요인인지에 대해 업계 내부에서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UBS의 아우즐라 애널리스트는 “양쪽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구조적 변화보다는 경기순환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며 “경기 회복 이후에도 미국 증류주 시장의 연간 성장률은 과거 4~5% 수준에서 못 미치는 1~2% 성장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