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 무산 피한 미중, 무역 전쟁은 ‘일시정지’

해외

이데일리,

2025년 6월 11일, 오후 06:52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핵심광물 및 희토류 문제는 이번 프레임워크 안에서 확실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중 2차 고위급 무역회담을 마무리한 후 양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면서 이처럼 밝혔다. 양국 협상팀은 프레임워크를 통해 양국이 수출 통제 조치를 완화하는 등 무역 갈등의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미중 무역 갈등은 다시 소강사태로 접어드는 모양새이나 반도체(미국) 대 희토류(중국) 통제권 다툼이란 근본적 문제 해결엔 접근하지 못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 美, 반도체 내주고 희토류 받을듯


이번 무역회담의 핵심 의제는 제네바 합의 이행, 즉 ‘수출 통제’였다. 양국은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위급 무역회담을 진행했지만, 서로가 비(非)관세 조치 완화 등 합의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은 다시 격화됐다. 미국은 중국의 핵심광물 및 희토류 수출 통제 지속을 문제 삼았고, 중국은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국적 미 유학생 비자를 취소한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화 통화에 나서면서 런던에서 2차 회담이 진행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허리펑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은 미국에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를 대폭 완화할 것으로 요구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때로는 협상단 간 긴장감이 고조돼 회담이 결렬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양국은 프레임워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틀간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희토류가 공급되지 않았을 때 미국이 취한 조치들이 이제 철회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들(중국)이 (희토류 및 핵심광물)수출 허가를 승인하면 우리도 ‘균형 잡힌 방식’으로 수출 제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및 핵심광물 수출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지난달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제트기 엔진 부품, 화학 및 원자력 소재 수출을 제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만큼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독일 등 서방 자동차 업계가 패닉에 빠지는 등 공급망 충격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극대화된 상황이다. 미국 F-35 전투기에 희토류의 한 종류인 사마륨이 약 50파운드 들어가는 등 방위 산업에서도 희토류는 주요 전략 물자다. 중국이 전세계 희토류 채굴 70%를 차지하는 등 사실상 희토류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 20시간 마라톤 협상…“결과 낸다는 결의로”

반도체(미국)와 희토류(중국)라는 각각 강력한 협상 카드를 쥔 양국의 협상은 9~10일 이틀에 걸쳐 20시간 가까이 고강도로 진행됐다. 러트닉 장관은 “하루 종일 회담은 거의 멈추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일하면 ‘그냥 대충하고 끝낸다’는 선택지는 없고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측도 똑같은 결의를 가지고 임했다고 확신한다”고 부연했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관세 인하 유예 기간은 오는 8월12일까지다. 이전에 미중이 최종 협상 타결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양측 모두 의욕적”이라며 “우리는 지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양국에 모두 의미있는 합의를 이뤄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기한을 연장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런던 회담 자체는 일단락됐으나 미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회담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어 대표는 “아직 추가 회담 일정은 잡혀 있지 않으나 언제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 “관건은 세부 사항”…일부 회의적 반응도

이번 회담으로 양국이 제네바 합의 무산은 피했으나 프레임워크의 실질적인 이행 수준과 최종 협상 타결 등이 관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크리스 웨스턴 페퍼스톤 리서치 총괄은 “결국 세부 사항이 핵심으로, 당장 시장 반응이 없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음을 시사한다”며 “미국으로 향하는 희토류 규모, 미국 첨단 기술의 대중국 수출 재개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리 부부장이 이번 프레임워크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NYT는 “관영 언론이나 외교관들이 세부 사항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적인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리 부부장은 또한 이번 회담에 대해 “양국은 전문적이고 이성적이며 심도 있고 솔직하게 소통했다”고 말했는데, NYT는 “중국 관영 언론은 상당한 의견 불일치가 있을 때 ‘솔직한’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고 짚었다.

경제정책 분석기관 베다 파트너스의 헨리에타 트레이즈 정책 디렉터는 “이틀간의 협상이 없었던 것보다는 낫지만 과거에도 이처럼 장시간 이어진 협상이 반복된 사례가 많다”며 “표현을 확인하고 의미를 조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큰 진전 없이 현상 유지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