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합의는 끝났다”… 美中 무역협상, 누가 웃었나

해외

이데일리,

2025년 6월 12일, 오전 08:09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중국과의 무역합의는 완료됐다”며 미중 무역 프레임워크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승인만 남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등 핵심 전략기술 통제를 유지하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희토류와 자석을 ‘선공급’ 받기로 했다. 미국산 제트엔진 및 관련 부품, 에테인(ethane)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가 일부 완화되고 중국 유학생들의 미국 대학 입학도 허용될 전망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기술 통제권’을 지킨 채 실리를 챙긴 모양새지만, 중국 역시 희토류 수출 면허에 6개월짜리 시한을 걸며 향후 협상에서의 지렛대를 남겼다. 일각에서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이길 방안이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美 “전략기술은 못 준다”… 中 “희토류 6개월 면허 내준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희토류다. 중국은 미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희토류 자석을 ‘선공급’하기로 했고, 미국은 이에 맞춰 일부 수출 통제를 해제한다.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장관은 “중국은 미국 기업의 자석 수입 신청을 즉시 승인할 것이며, 미국은 이에 상응해 일부 조치를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에 대한 통제는 계속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루트닉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AI 경쟁에서 중국과 겨루고 있으며, 최고급 칩은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략 물자에 대한 주도권을 미국이 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국 역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흔적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희토류 수출 면허는 6개월짜리로 제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중 간 무역협상이 재차 긴장 국면에 접어들 경우를 대비한 중국 측의 전략적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완전히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우리는 55%, 중국은 10%”… 여전히 높은 수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55%, 중국은 10% 관세를 유지한다”며 미국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수치는 기본 관세(10%)에 펜타닐 관련 추가 부과금(20%)과 품목별 관세 25%를 더한 수치다. 여전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 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날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현재 수준에서 더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이번 합의로 새로 오른 관세는 없으며, 오히려 지난달 제네바에서 합의한 ‘고율 관세 90일 유예 조치’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실질적인 관세 인하나 폐지는 없는 상태다. 에버코어ISI의 네오 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의 관세 구조를 마치 유리한 합의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무역 협상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허리펑 중국 부총리,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리청강 중국 국제무역담당 대표 겸 상무부 부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AFP)
◇누가 더 얻었나… “트럼프, 중국 통제 카드 없어”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합의가 양국이 무역 관계를 전면전으로 치닫기 몇 달 전으로 되돌렸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전략 기술을 계속 통제하며 ‘기술패권’ 프레임을 유지했고, 중국은 수출 규제 완화와 유학생 입국 허용을 끌어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수출 면허에 6개월 유효기간을 설정해 추후 협상에서 활용할 여지를 남겨뒀다.

데릭 시저스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이건 그냥 임시방편일 뿐이다. 중국은 6개월 뒤 미국이 당에 대해 무례했다는 이유로, 혹은 시진핑에게 불쾌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런던 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문 초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당초 베이징과의 협상에서 설정한 광범위한 목표에 못 미칠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더 통제할 카드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피니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략의 더 큰 문제, 즉 전략이 없다는 점으로 이어진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그가 첫 임기 때 시도했던 것처럼 중국을 괴롭힐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 현명한 무역 전략은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중국의 약탈적 무역 관행에 대응하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에밀리 킬크리스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부차관보는 “미국은 안보를 이유로 수출통제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면서 “그런데 이제 중국은 모든 향후 협상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낼 빌미를 얻게 됐다. 매우 위험한 선례”라고 지적했다.

◇일단 합의 했지만…해결 안 된 근본 과제들

이번 합의로 당장의 무역전쟁은 피했지만,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문제나 보조금 이슈, 불공정 무역관행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네바 협정으로 설정된 고율관세 90일 유예 시한도 8월로 다가오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추가 회담은 예정돼 있지 않지만, 양국은 자주 소통 중”이라고 밝혔고, 중국 측 협상대표인 리청강도 “이번 합의가 신뢰 구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저스 AEI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시진핑 회담 없이는 실효성 있는 합의가 어려우며, 있어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앞으로도 공격적일 것이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계속 불안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