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에 동참할지 결정했는지 묻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모호한’ 화법이다. 미 언론들은 이 발언을 단순한 즉흥적 답변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과 행동 패턴,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매우 잘 짜여진 정교한 심리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알쏭달쏭 트럼프 발언…“모호성 뒤에 속내 숨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협상하길 원한다. 백악관에 오겠다고 제안했다. 용기 있는 행동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지금 협상하자고 하기엔 너무 늦었다. 일주일 전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란)은 아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아무것도 늦은 것은 없다”고도 했다.
같은 자리에서 모순된 메시지를 동시에 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간의 발언들에 견줘보면 ‘협상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약속했던 60일 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가는 치러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자기 자랑, 성과 과시, 전(前) 정부 비난 등과 같은 특유의 화법 속에 진짜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이란에 요구해온 메시지는 명확하다. 바로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택지는 군사적 해법과 외교적 해법 두 가지였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해법을 지속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늘상 해오던 것처럼 ‘협상’을 선택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감 시한’ 60일도 설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는 거래를 선호한다”며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에게 직접 친서를 보냈다고 했다. 친서엔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당신을 지도자 자리에서 몰아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거래를 원한다”고 적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핵무기 포기를 압박한 것이지만 그 방식만큼은 평화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4일 마감 시한 종료가 가까워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이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마감 시한이 지나자마자 지난 13일 이란을 공습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이 61일째다.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란에 60일을 줬다. 나는 이란이 굴욕과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협상이 타결되길 원했기에 그들(이란)을 구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軍개입 카드 손에 쥔 트럼프…“전면전 걱정 안해”
트럼프 대통령의 심리전이 무서운 이유는 군사 개입 카드도 실제로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60일을 넘긴 순간 스스로 옭아맸던 외교적 해법만 고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택지가 늘었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귀국해 상황이 급박하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휴전 때문에 돌아갔을 것이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추측에 “훨씬 더 큰 일”이라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암시했다. 1시간 20분 동안 국가안보팀과 실질적인 군사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전을 우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미군이 드론을 이용해 카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사령관을 암살한 전례가 있어서다. 당시 이란의 분노와 보복을 샀지만 전면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하메네이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제거하지 않겠다”며 압박했다.
아울러 “우리는 휴전보다 더 나은 것을 찾고 있다. 진짜 끝을 원한다”며 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예고했다. 이란의 완전한 굴복을 통한 중동 질서 재편까지 예상한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단독으로는 이란의 핵 야망을 확실하게 끝낼 수 없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이란의 우라늄 고농축 시설은 포르도 산악지대 지하 80~90m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의 벙커버스터 폭탄(GBU-57)이 유일한 해법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4월 직접 백악관을 방문해 벙커버스터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이스라엘 총리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사진=AFP)
◇아직까진 협상에 무게…이란에 ‘최종 일주일’ 제시
이스라엘의 하메네이 암살 계획 및 벙커버스터 폭탄 지원을 거부한 사실이나 미국 내 정치권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까진 협상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외교의 문을 닫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며 “나는 싸우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그러나 그것이 싸움이냐 (이란의) 핵무기 보유냐 사이의 선택이라면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며 “다음 주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일주일보다 짧을 수도,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거나 핵무기 포기를 선언할 수 있는 ‘최종’ 시한을 제안한 것으로, 군사적 해법은 이란의 대응에 따른 추가 옵션으로 남겨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 행동 가능성과 관련해 가장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이란은 협상을 원하고 있지만,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는 연일 “끝까지 항전하겠다”며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미국이 군사 개입할 경우 “필요한 표적이 있는 모든 곳에서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날까지 일주일 연속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스라엘은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약 250㎞ 떨어진 아라크의 중수로 핵 시설을 공습했다. 이란은 20여발의 보복성 탄도미사일을 이스라엘 남부로 발사해 병원 등 민간시설을 타격했다. 텔아비브, 라마트간, 홀론 등 주요 도시에서도 피해가 보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