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란·북한 보니…“핵무기만이 안전 보장” 인식 확산

해외

이데일리,

2025년 6월 23일, 오후 03:3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핵시설 공습 등으로 글로벌 안보질서가 흔들리면서, 세계 각국이 핵무장 필요성을 다시 고심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도가 약화하고 있어서다. 이란, 북한 등 기존에 핵무장을 시도해온 국가들뿐 아니라 한국, 일본, 독일, 튀르키예 등 비핵국가에서도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상황실에서 공군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란의 핵시설 3곳을 공습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백악관)


◇우크라 전쟁이 촉발한 ‘비핵화 회의론’

글로벌 정치전문 매체 유라시아리뷰는 22일(현지시간) “세계는 30년 이상 핵 재앙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중한 조치를 취해 왔다.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 등 외교를 통해 핵무기 확산에 대한 억지력이 발휘됐으나, 이젠 그러한 시대가 끝이 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핵탄두 수는 약 1만 2241개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9600개 이상이 군 비축량에 포함돼 있으며, 약 4000개가 이미 미사일이나 현역 부대에 배치됐다. 약 2100개는 고도의 작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수분 내에 발사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총 9개국으로 5개국은 1968년 NPT에 따라 핵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이다. 핵탄두 대부분은 러시아와 미국이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도 유사한 태세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머지 4개국은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스라엘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핵무기를 시험했고, 북한도 2005년 첫 핵폭탄을 시험했다. 1960년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핵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이스라엘은 최소 9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핵 보유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과 관련해선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9개 핵무장국은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는 동시에 새롭고 치명적인 기술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등을 통해 핵무기 보유량을 줄여오던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포기를 강력히 요구했고,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당시 세계 3위였던 핵전력을 러시아에 넘겼다. 미국·영국·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주권을 보장했지만,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2022년 전면 침공으로 이 약속은 무용지물이 됐다.

전직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인 스티븐 파이퍼는 “핵무기를 포기한 대가가 영토 상실이라면 앞으로 누가 비핵화에 동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도빌레 샤칼리에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핵무기 보유 자체가 공격 회피와 전략적 방어 우위를 제공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핵무기를 가진 국가는 침공당하지 않는다는 현실론을 강조한 발언이다.

(사진=AFP)


◇이란·북한 이어 美동맹국서도 핵무장론 고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 데 이어, 최근 이란의 핵 시설 공습에 나서면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은 오히려 확산했다는 분석이다.

이란의 경우 핵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하며 “핵무기만이 국가 생존을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더욱 강화했다. 이란의 결심에는 북한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병력까지 파견했지만 이란과 달리 별다른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처럼 핵을 포기했다가 침공당하는 일이 없도록 핵무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에 북한과 인접한 한국과 일본에서도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의 군사 위협까지 확대하는 가운데, 더이상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나토 사례에 비춰봤을 때 더이상 미국이 보호해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와 마찬가지로 미군 철수를 앞세워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중동 국가들도 이번 이란 공습을 계기로 핵무장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독자 방위체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WSJ은 “과거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와 같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확보하려 시도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엔 한국, 일본, 폴란드, 독일, 튀르키예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소수의 핵무기 보유국이 전 세계 군사·안보를 억지해온 근본적인 질서,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직 나토 주재 미국 대사인 커트 볼커는 “이제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가 주권의 열쇠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20년 후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