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전화 공세, 회유, 압박…'트럼프 감세법' 하원 통과 막전막후

해외

이데일리,

2025년 7월 04일, 오후 04:13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 실현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One Big Beautiful Bill Act)이 미 의회의 마지막 관문을 넘으면서 법안 통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당초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많았던 탓에 간신히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 기술’을 발휘해 백악관에서의 긴급 회의와 전화 공세를 펼친 게 막판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
◇협상가 트럼프, 막판까지 반대파 설득 총력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트럼프는 어떻게 자신의 OBBBA를 통과시켰나’라는 기사에서 대통령과 참모진이 공화당 내 반대파 설득을 위해 막판 회의, 전화 공세를 진두지휘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미 하원은 본회의를 열고 상원을 통과한 감세 패키지 법안인 OBBBA를 표결에 붙여 찬성 218표, 반대 214표로 가결했다. 공화당 의원 220명 중 2명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이탈표를 줄였다. 앞서 지난 1일 상원 표결 당시 공화당에서 3명의 이탈표가 나왔다. 민주당 의원 212명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OBBBA 법안은 지난 1일 상원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상원 의결 과정에서 몇몇 조항에 수정이 이뤄져 이날 하원에서 재의결 과정을 거쳐 확정됐다.

하원 표결에 앞서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재정적자 확대와 복지 삭감 등에 반발해 막판까지 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다. 공화당 내 반란표 우려가 계속되자 자칭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협상에 나섰다. 2일과 3일 백악관 회의와 전화 통화를 통해 일부 의원들의 우려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 권한을 사용하겠다며 설득에 나섰다. 풍력 발전 설비에 쓰이는 부품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고, 일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인허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들이 세금 공제를 받기 전 착공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늘린 것에 대해 반발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을 달래기 위한 조치다.

특히 법안에 반대 의견을 낸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켄터키주)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했고, 매시 의원은 여전히 법안에 반대했지만 하원 본회의 상정을 위한 절차 표결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찬성표를 던지기 위해 거래를 했냐는 질문에 “몇몇 의원들과 거래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어차피 찬성했을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크고 아름다운 법안’ 통과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AFP)
◇트럼프 ‘압박과 회유’로 당내 장악력 입증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은 대통령의 막판 총공세가 2일 새벽 5시부터 시작됐다고 전했다. 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의원들과 2시간 회의를 가진 뒤 밤늦게까지 전화 공세를 이어갔다. 의사당에서 표결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지기도 했다. 공화당 내부에서 조차 찬반 갈등이 심했고, 표결이 확정되지 않아 시간을 끌면서 의원들을 설득했다는 방증이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오전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대통령, 부통령, 법무팀, 여러 부처 관계자들이 나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고 말했다고 WJS는 전했다.

러스 보트 백악관 관리예산국(OMB) 국장도 직접 의회를 찾아 예산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공화당은 대체 뭘 기다리는 거죠?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거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지금 화가 났고, 그게 공화당 표를 깎아먹고 있다”며 찬성표결을 재촉했다.

그는 또 반대표를 던졌던 매시 의원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며 다른 의원들에게 OBBBA에 반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지난달에는 법안에 반대하는 매시 의원을 상대로 공화당 경선에 나설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새벽 두 사람은 전화 통화를 했고, 긴장이 다소 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시 의원에 대한 공격을 멈출지는 불확실하다”며 매시 의원은 통화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간 공개적으로 충돌해 온 칩 로이 하원의원(텍사스)은 이번 협상에서는 머리를 맞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로이 의원에 대해 “재능이 없는 야심가일 뿐”이라며 충성파 후보를 내세워 낙선시키겠다는 압박을 가했지만, 이번 만큼은 법안 통과 과정에선 협력했다.

로이 의원은 “이게 정치”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특유의 협상가적 면모가 공화당을 관통하면서 갈등과 협력의 양면성이 동시에 드러난 장면이다.

WSJ는 “트럼프의 모호한 약속과 회유 전략은 효과를 발휘, 하원이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이는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의 철저한 장악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