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네이 뮐러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는 지난 9일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관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에 있어 슬로베니아가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슬로베니아는 지난해 기준 인구 212만명, 나라 면적은 2만273km²다. 한국과 비교하면 작은 나라지만,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 출발한 선적이 중유럽으로 향한다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코페르 항을 거치는 것이 북유럽 항만을 우회하는 것보다 1주일 정도 이동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미 현대,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 뮐러 대사는 “코페르 항을 통하는 한국과의 교역은 현재 자동차·철강 위주이지만 다른 한국 기업들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국 협력을 기대하는 분야로 바이오, 수소, 우주 등을 꼽았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다음은 뮐러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올해 양국이 수교 33주년을 맞았다. 현재 양국의 외교 관계는 어떤가.
△2021년 한국과 슬로베니아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다. 특히 양국 모두 지난해와 올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함께 활동했다. 양자 간 상호 교류도 활발히 진행됐다. 2021년 정상회담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 자리에서 양국에 대사관 개설을 발표했는데, 그 현장에 외교부 일원으로 나도 있었다. 당시에는 주한 슬로베니아 초대 대사로 임명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현재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최고위급 상호방문도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산업적 측면에서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나.
△슬로베니아는 작은 나라라서 중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주로 부품 공급에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 주로 협력해왔지만, 최근에는 한국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경제는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인구 대비 박사 학위 소지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가 미래 발전의 초점을 바이오 산업에 두고 있다. 우리는 이미 유럽 내 선도 국가 중 하나이며, 한국과 협력을 희망한다. 두 번째는 수소 산업이다. 한국은 수소 생산과 활용에서 선구자다. 세 번째는 우주 산업이다. 슬로베니아도 위성을 발사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 등과 협력하고 있다. 한국 우주항공청(KASA)과도 협력하고 싶다. 코페르 항구도 매우 중요하다. 철도 연결도 잘 되어 있고, 내년에는 물동량 확대를 위한 인프라가 확충된다. 일례로 다른 유럽 국가 대사들이 배편으로 한국으로 짐을 보내면 2~3개월이 걸린다는데 나는 40일 만에 도착해 다들 부러워 했다.
―슬로베니아는 친환경 정책을 중시 여긴다. 한국에도 소개할 만한 친환경 정책이 있다면.
△주한 대사관에 양봉 시설을 마련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슬로베니아는 예로부터 자연을 소중히 여겨왔다. ‘그린 슬로베니아’를 국가 브랜드로 삼고 있다. 헌법에 ‘식수에 대한 권리’를 명시돼 있고 전기차 보급 확대, 탈탄소 목표 등을 내세우고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이란 개념도 일찌감치 도입했다. 대규모 관광에 집중하지 않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존하고 방문객이 자연 그대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덕분에 2016년 슬로베니아가 세계 최초로 지속가능 관광 1위 국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슬로베니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가.
△한국은 매우 인기 있다. 외국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은 줄었다고 하는데 한국어는 예외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루블라냐 대학에 있는 한국학과는 정원의 3~4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린다. 그만큼 한국 문화와 한국어가 슬로베니아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다. 양국은 다른 점도 많지만 일상에선 비슷한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등이 닮았다고 느꼈다. 역사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양국 모두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외부 압력에 시달렸지만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한국 대사로 임명됐을 때 주변에서 ‘문화 충격’을 이야기했는데, 금방 집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부임 첫 해 2022년 성탄절 연휴를 슬로베니아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때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이 들더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자 전쟁 등 유럽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슬로베니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국제법 준수다. 이 원칙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등 모든 갈등에 적용된다.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일원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주장하는 국제법의 기본은 분명하다.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강하게 비판한다. 두 번째는 인권 존중이다.
―슬로베니아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서 한국과 같은 국방비 증액 압박을 받고 있다.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슬로베니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집권하기 전부터 국방비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2024년 당시 국방비는 GDP 대비 1.29%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를 늘리기로 합의해 2025년까지 2%, 2026년에는 3%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단순히 물리적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사이버 공격과 사이버 전쟁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도 책임감을 갖고 있다. 우리 역시 라트비아, 중동, 발칸 등에서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작은 나라라 군 규모가 크지 않지만 나토의 일원으로서 공동 방위에 기여해야 하고, 책임 있는 국가로 행동하고자 한다.
◇뮐러 대사는?
△1974년 △류블랴나대학교 국제관계 학사 △2020년~2022년 슬로베니아 외교부 공공외교안보정책국 국장 △2022년~현재 주한슬로베니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