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도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국빈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사진=AFP)
17일(현지시간)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영국 런던 도심과 윈저성 등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런던 경찰은 최대 5000명이 이번 시위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했다.
50개 이상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스톱 트럼프 연맹’(Stop Trump Coalition) 시위대는 “트럼프를 환영하지 않는다”, “인종차별 반대”, “이스라엘 무장 중단”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런던 중심부 포틀랜드 플레이스에서 국회의사당 인근 광장을 향해 행진했다.
BBC는 기후 운동가부터 인종차별 반대 단체, 친(親)팔레스타인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체들이 시위대 연맹에 포함됐다면서,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 강압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 인종·이민·인권·기후변화 정책 등을 강력 규탄했다고 전했다.
영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시위 주최자 중 한 명인 조이 가드너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증오하는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빈 방문 때에도 반대 시위에 참가했었다는 한 여성은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역겹다. 그가 상징하는 모든 것이 역겹다”고 말했다.
중동계·이슬람계 시민들도 이날 시위에 적극 동참해 “가자지구의 인권 위기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고통을 외면한 미국 정부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트럼프 대통령 국빈 초청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행진에 앞서 연맹측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인종차별에 굴복하는 (영국) 정부는 파시즘의 문을 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위 현장에선 “우리는 트럼프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며 “영국 정부도 권위주의 확산에 적극 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영국 왕실 역사가인 로버트 레이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찰스 3세 국왕의 친필 사인이 담긴 서한을 통해 국빈 초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17일(현지시간) 윈저성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국회의사당 인근 광장에 멈춰선 시위대는 미리 마련된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으며, 일반 참가자 외에도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 자라 술타나 전 노동당 의원, 코미디언 니시 쿠마르, 녹색당 지도자 잭 폴란스키 등이 연사로 나섰다. 가수 빌리 브래그의 공연도 개최됐다.
국빈 만찬이 진행된 윈저성 앞에도 일부 시위대가 몰렸다. 윈저성 외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3년 기소 당시 머그샷, 미국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진, 그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다룬 보도 영상 등이 수분간 투사됐다. 미리 기획된 퍼포먼스로, 경찰은 이를 주도한 4명의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외에도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빈 방문 때 등장했던 ‘트럼프 베이비’ 풍선을 포함해 다양한 조롱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위 현장엔 총 1600명 이상의 경찰이 배치돼 질서유지에 나섰으나, 곳곳에서 발연·소란이 이어지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 측은 시위 주최측과 밀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모든 참여자들에게 “지역 사회를 배려하고 혼란을 최소화 해달라”고 요청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은 당초 폐쇄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화려한 국빈 방문 행사를 평화롭게 즐기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윈저성은 습격하는 대신 성벽 일부를 대형 전광판으로 변모시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