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미 키멜 (사진=afp)
◇美20년 간판쇼 폐지 위기에
미국 ABC 방송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지미 키멜 라이브’를 오늘부터 무기한 결방한다”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6일 키멜이 방송 오프닝에서 커크 피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키멜은 “이번 주말 우리는 새로운 저점을 찍었다. 마가(MAGA·미국을 더욱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를 뜻함) 진영은 커크를 살해한 이 청소년(The kid)을 자신들과 무관한 존재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친구 커크”를 잃은 와중에도 백악관에 새로운 연회장이 들어선다는 것을 자랑하는 영상을 비꼬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애도의 네 번째 단계이 있는 것 같다. 철거 이후 건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키멜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이 살해된 후 어른이 보여야 할 슬픔의 방식이 아니다. 마치 네 살짜리 아이가 금붕어가 죽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라고 비판했다.
이 키멜의 발언은 이후 보수진영의 반발을 불렀다. 브렌던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같은 날 보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러한 발언은 뉴스 왜곡의 반복이며, 방송 면허 취소까지 검토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 33개 ABC 계열 방송국을 운영하는 넥스타 미디어 그룹도 공식 성명을 내고, 키멜의 쇼를 편성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넥스타는 “키멜의 발언은 커크의 죽음을 다루는 데 있어 매우 공격적이고 무감각했으며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점의 정치적 담론에 부적절하다. 지금 시점에서 그의 방송을 계속 내보내는 것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넥스타 외 다른 지역 계열국 운영사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ABC 방송의 간판 심야프로그램이자 2003년 첫 방송 이후 20년 넘게 사랑받아온 장수 프로그램인 지미 키멜쇼가 무기한 결방 조치에 이른 것이다. ABC방송과 키멜의 계약은 2026년 5월까지로 만약 그 때까지 결방조치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쇼가 폐지될 가능이 커진다.
이번 디즈니와 넥스타의 발표가 트럼프 행정부에 밉보이지 않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디즈니는 ESPN의 NFL 네트워크 인수에 대한 규제 당국의 승인을 구하고 있으며, 넥스타는 경쟁사인 테냐를 62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ABC의 발표에 대해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서 “ABC가 마침내 해야 할 일을 할 용기를 낸 것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극단주의 좌파 소행”vs“커크 사망 정치적 이용”
이번 사태는 미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와 언론의 역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이 어디까지 확산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마가 진영이 커크 피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는 키멜의 발언은 사건 이후 마가 지지자들은 우파 진영에서 영향력이 큰 커크가 살해되자 “좌파 극단주의 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며 커크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을 맹비난하며 보복을 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커크 사망과 관련된 비하글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항공사와 대학, 방송국 등에서 집단 해고·정직되는 사례가 속출됐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5일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커크의 죽음에 기뻐하는 외국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무관용’ 조치와 관련, 일각에선 “공적 영역의 발언까지 즉각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발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AP통신은 “상반된 정치적 시선을 가진 미국 사회의 관용성과 민주주의 원칙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일 유타주의 한 대학에서 연설 중이던 커크를 살해한 용의자는 타일러 로빈슨이라는 이름의 22세 청년으로, 그는 사건 직후 룸메이트와의 대화에서 “난 그의 증오(hatered)에 질렸다. 어떤 증오는 대화로는 해결이 안된다”며 범행 동기를 밝힌 바 있다.
다만 그의 정치적 성향 등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공개 기록에 따르면 그가 과거 유타주에서 무소속 유권자로 등록한 바 있으며, 지난 두 번의 정기총선에서는 어디에도 투표하지 않았다. BBC는 그의 부모는 공화당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