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 러드 주미 호주대사 “구조적 미중갈등이지만, 관리 가능한 경쟁”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0월 16일, 오전 04:09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는 15일(현지시간)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라며 “양국 모두 상대방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체제적 경쟁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중 경쟁이 격화되더라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유지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는 15일(현지시간)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연례회의 대담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상윤 특파원)
러드 대사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연례회의의 대담 자리에서 “중국은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대체하려는 장기 전략을 갖고 있으며, 미국 또한 자국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안보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이 “완전한 탈동조(decoupling)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산업·국가안보 영역에서 위험 축소(de-risking)가 본격화됐다”고 평가했다.

두 차례 호주 총리를 지냈던 러드 대사는 워싱턴 외교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사’로 불린다. 중국어(만다린)에 능통한 그는 중국 현대정치 전문가로, 옥스퍼드대에서 시진핑의 마르크스주의적 민족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피할 수 있었던 전쟁’(The Avoidable War)서는 미·중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러드 대사는 이번 연설에서도 학자이자 외교관으로서의 통찰을 바탕으로 ‘충돌 없는 경쟁’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러드 대사는 시진핑 주석이 2017년 이후 경제 운영 방식을 시장보다 국가 주도 중심으로 회귀시킨 점을 지적했다. 국유기업 비중 확대, 민간부문 위축, 과잉 생산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중국은 내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과잉 생산품 수출에 의존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구조적 둔화와 수출 중심 성장의 재가동이 세계 경제의 공급과잉·가격 왜곡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러드 대사는 최근 희토류 수출 제한과 같은 조치를 예로 들며 “중국 관련 지정학 리스크가 추상적 우려를 넘어 실물경제를 직접 건드리는 현실적 위험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관세, 기술 통제, 대만 문제 등은 “단기적 변수이면서도 글로벌 금융·무역 시스템에 구조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잠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미·중 경쟁이 격화되더라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유지될 여지가 있다”며 신중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을 ‘비현실적 낙관론자(Pollyanna)’가 아닌 “합리적 낙관주의자(Rational Optimist)”라고 정의하며, 미·중 관계가 충돌 없이 경쟁을 지속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미국의 구조적 복원력 회복이다. 러드 대사는 “미국이 기술·제조·에너지 산업을 다시 강화하면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재건하고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 이는 전략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신호”라고 말했다. 둘째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억지력 유지다. 그는 “군사적 균형이 유지되는 한, 양국 모두 직접적 충돌을 피할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은 양국이 서로의 전략적 한계를 인정하고 ‘관리된 전략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러드 대사는 이 체제가 작동한다면 미·중 간 경쟁은 지속하되, 무력충돌 없이 경제·기술 경쟁으로 국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양국이 각자의 레드라인을 존중하고, 혁신·생산성·체제 경쟁에서 ‘더 나은 시스템’이 승리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드 대사는 “다음 글로벌 금융위기나 팬데믹 같은 초국경 위기에서는 미·중 간 실용적 협력이 불가피하다”며 “경쟁 속에서도 협력의 최소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중국은 강자를 존중하고 약자를 경멸한다. 미국이 경제·기술·제조 기반을 강화할수록 중국도 현실적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