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현지시간) 볼리비아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중도 성향 로드리고 파스(58) 당선인.(사진=AFP)
파스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이제 볼리비아를 세계에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스 당선인은 현 상원의원으로, 하이메 파스 사모라 볼리비아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그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유지하되 민간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온건한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기존 좌파 정부에 실망했지만 키로가 후보의 긴축 정책에는 부담을 느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스 당선인은 올해 8월 1차 투표 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3~4위권으로 분류됐으나 부통령 후보인 에드만 라라의 인기에 힘입어 막판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경찰 출신인 라라 부통령 당선인은 부패를 고발하는 소셜미디어(SNS) 틱톡 영상으로 인기를 얻은 인물로, 젊은 층과 노동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올해 8월 대선 1차 투표에서 파스 당선인은 32.06% 득표율로 키로가 후보(26.70%)를 앞질렀다. 심화된 경제위기로 2006년 이후 줄곧 볼리비아를 이끌어온 사회주의운동당(MAS) 지지율은 급락해 1차 투표에서 일찌감치 좌파 성향 후보는 탈락했다.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은 경제였다.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칠레와 함께 ‘리튬 삼각지대’로 불릴 정도로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무리한 국책 사업, 외환 정책 혼선, 관료 부패 문제 등으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40년 만의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며 연료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두 후보 모두 국가 주도형 모델 수정을 제시했으나 파스 당선인은 중소기업 세제 혜택과 지방재정 자율권 확대를 포함한 점진적 개혁을, 키로가 후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대규모 지출 삭감을 주장했다.
또한 두 후보 모두 2009년 이후 악화된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경제를 안정시키겠다고 공약했다. 파스 당선인은 9월 말 미국 측과 연료 공급 보장을 위한 15억달러(약 2조 1295억원) 규모의 경제협력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스 당선인은 최근 자택에서 진행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 볼리비아 민주주의의 새 단계를 열겠다”고 밝히며 “국가가 더 이상 경제의 중심축이 되지 않는, 국민을 위한 경제를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중남미 대륙을 휩쓴 좌파 집권 흐름(핑크 타이드·분홍 물결)의 균열로 보고 있다. 중남미 지역 경제 대국인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등을 현재 좌파 정부가 이끌고 있으나 최근 수년 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등에서 우파 성향 정치인이 집권하고 있다. 내달 대선을 앞둔 칠레에서도 보수·우파 진영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