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 ‘고용 없는 성장’ 본격화…美, 올해 9개월간 95만명 해고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04일, 오전 10:21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올해 미국에서 해고된 인원이 100만명에 육박했다. 경기둔화 우려가 완화했음에도 기업들의 인공지능(AI) 도입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맞물려 ‘고용 없는 성장’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AFP)


4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재취업 컨설팅 및 인력 구조조정 전문 기업 챌린저, 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는 올해 1~9월 미 기업·기관의 인력 감축 발표를 취합한 결과, 해고 인원은 총 94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55% 급증한 것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다.

올해 초 정부효율부(DOGE)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제외해도 1년 전과 비교해 해고 인원이 1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감원 사유 중 ‘시장 및 경제 상황’이 약 20%로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로 소비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소매업종 해고 인원은 전년 동기대비 3배, 물류 부문은 2배 각각 증가했다.

물류업체 UPS는 지난달 말 미국 직원 4만 8000명을 감원했고, 생필품 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도 관세 상승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전 세계에서 7000명을 줄였다. 대형 유통업체 타깃은 기업 부문 일자리 1800개를 없앴다.

AI 도입도 올해 대규모 감원의 한 축을 담당했다. CC&C에 따르면 ‘AI를 직접적인 감원 이유’로 제시한 기업은 4%에 불과하지만, 효율화를 명분으로 앞세운 인력 조정은 지속 확산 중이다. 특히 AI가 대체하기 쉬운 사무직과 전문직 중심의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는 약 13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AI 도입에 따른 재교육과 사업 재편을 병행 중이다. PwC도 미국 내 직원 1500명에 대한 인력 삭감을 결정했다. 기술 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5월과 7월 총 1만 5000명을 감축했고, 아마존 역시 지난달 말 1만 4000명을 해고했다. 메타도 수만명 규모의 해고를 단행했다.

컬처파트너스의 제시카 크리겔 최고전략책임자는 “현재 감원의 특징은 경기 악화와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라며 “기업들이 AI를 구조조정의 합리적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컨퍼런스보드의 로빈 에릭슨 연구원도 “광범위한 업종에서 AI 도입 시점을 구조조정 기회로 보고 있다. 인력을 줄여도 저항 없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실례로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사내 메모에서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며, 직원들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그는 지난달 30일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는 여론 비판을 의식한 듯 “재정적 이유도 아니고, AI 때문도 아니다. 조직 문화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대규모 감원이 잇따르며 실업률 상승 등 고용시장 악화 우려가 제기된다. 미시간대학의 지난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향후 12개월 동안 실업률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년 전 32%와 비교하면 2배 늘어난 것이다.

다만 공식 통계에서는 아직 뚜렷한 악화 조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 노동부가 중소기업 포함 2만 10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고용동향조사(JOLTS)에서 해고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늘지 않았다”며 “아직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업들의 신규 채용 축소와 인력 재편 움직임이 향후 고용 창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대다수 기업들이 인원 감축을 발표한 뒤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감원 발표 당일 아마존 주가는 1%, UPS는 8% 상승했다. 시장은 감원을 ‘효율성 제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한 감원이 고객 불신과 조직 내 사기 저하를 야기, 장기 성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닛케이는 “미 경제가 ‘AI발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며 “기술 혁신이 수익을 높여주지만, 그 대가로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이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요 기업 구조조정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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