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주석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을 키웠고, 다카이치 총리도 미국과 공조를 재차 확인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미국 입장은 경제무역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통상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등 실리를 챙길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인근 김해공군기지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AFP)
◇미·중 내년 셔틀 외교 예고…대만·우크라 등 논의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24일(현지시간) 전화 통화를 통해 내년 상호 국빈 방문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측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년 4월 중국을 방문할 것이며 이후 시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펜타닐 관세 인하,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 등 여러 경제무역 현안에 합의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통화는 3주일 전 한국에서 있었던 매우 성공적인 회담의 후속”이라면서 “이후 양측은 합의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대단히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통화에서 “부산 회담 이후 중·미 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개선됐다”면서 “중·미가 합하면 서로 이익이 되고, 싸우면 모두 해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검증됐다”고 화답했다.
이번 통화에서 중국측이 공들인 부분은 대만 문제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위대한 지도자”라면서 “미국은 대만 문제가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했다”고 언급했음을 밝혔다.
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한 시 주석의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 답을 공개한 것은 최근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에 따른 중·일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중 정상 대회에서 대만 문제가 언급된 것은 지난 6월 5일 전화 통화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9월 19일 통화와 10월 30일 정상회담에선 대만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통화는 미국이 시작한 걸로 이해했다”고 밝혔으나 다수 외신은 시 주석의 제안으로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면서 이를 이례적 외교 행보라고 지목했다. 또 “시 주석이 대만 문제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칠 전략적 기회를 보고 있다”면서 중국이 미국의 대만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AFP)
◇명분·실리 챙기려는 트럼프, 중·일 갈등은 지속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직접 대만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러시아, 펜타닐, 대두, 기타 농산물 등 많은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중·일 직접 갈등의 원인인 대만을 건드리기보단 우크라이나 같은 현안을 건드리면서 대화 주제에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년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를 예고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경제무역 분야에서 타협점을 찾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대만 문제를 논의하면서 러-우 전쟁 종료와 미국산 농산물 추가 구매 등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을 계기도 마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은 이제 대만과 관세 같은 사안에서 미국의 양보를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제안할 기회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통화 후 곧바로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미·일 동맹을 다지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 요청으로 전화 통화했다”면서 “미·중 정상 간 통화 등을 포함한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통화에서 대만 발언과 관련된 이야기도 오갔느냐는 질문에 “상세한 내용은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양국 간 긴밀한 연계를 확인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우린) 매우 친한 친구이며 언제든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일 정상과 통화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 의견차가 명확한 만큼 당분간 갈등이 해소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중 정상 통화와 관련해 “미·중 관계 안정은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매우 중요하다”고 원론적 입장을 전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측이 중국의 잘못된 발언 철회 요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사회가 일본이 과연 반성하고 잘못을 시정할 성의와 행동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한편 미·중·일 정상간 통화가 이뤄진 후 후속 논의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같은날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와 회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류하이싱 대외연락부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데이비드 퍼듀 주중 미국 대사를 만나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