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재정 건전화 위해 대규모 증세…전후 최대 세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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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1월 27일, 오후 04:24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영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증세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득세 기준 구간 동결, 연금 세제 혜택 축소, 배당·부동산·저축소득 과세 강화 등 전방위적 증세가 추진되며 영국의 조세부담률은 전후 최고치에 이르게 됐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런던 하원에서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AFP)
26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이날 대규모 증세 조치가 담긴 예산안을 발표하며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세입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예산책임국(OBR)에 따르면 이번 예산안으로 2029∼2030회계연도까지 연간 260억파운드(약 50조 6000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걷게 된다. 그 결과 영국의 세수 대비 국내총생산(GDP) 비율인 조세부담률은 38.3%에 이르러 전후 최고치를 경신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유로존 평균인 41%보다 낮지만, 영국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2030년까지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동결이 포함됐다. 과세 구간 동결은 명목임금이 오르면 더 많은 사람이 자동으로 높은 세율 구간으로 진입하는 효과를 가져와 ‘조용한 증세’로 불린다. 이 조치만으로도 연 80억파운드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한 연금 납입 방식 중 하나인 ‘급여 희생’ 방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하고 저축·배당·투자소득에 대한 세율을 올렸다. 200만파운드가 넘는 고가 주택에 대해선 이른바 ‘맨션세’를 신설했다. 아울러 기존의 연료세율 동결은 유지하되 전기차를 대상으로 주행거리 기반 요금을 새로 부과해 감소하는 유류세 수입을 보전하는 조치도 포함됐다.

리브스 장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반대에 직면하겠지만, 노동자를 위한 더 공정한 대안은 없다”며 “모두에게 기여를 요청하고는 있지만, 가장 부유한 이가 가장 많이 기여하도록 세제를 추가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16개월 만에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저성장과 높은 물가, 고금리, 재정 적자 부담이 겹치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경제 대응 능력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2년 연속 대규모 과세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리브스 장관은 지난해에도 약 400억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단행하며 당시 일회성이라고 강조했지만, 올해 또다시 대규모 증세에 나섰다.

이번 예산안 발표 후 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국 30년물 국채금리는 하루 만에 12bp(1bp=0.01%포인트) 떨어지며 4월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재정 건전성 우려가 완화됐다고 본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조치가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딜로이트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언 스튜어트는 “매년 260억파운드를 추가로 걷겠다는 정책 방향은 장기적으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OBR는 이날 영국의 올해 GDP 증가율 전망치를 1.5%로 올해 3월 전망치(1.0%)보다 상향 조정하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9%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OBR은 생산성 부진과 브렉시트 등을 하향 조정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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