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27일(현지시간)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전날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 ‘웡 푹 코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현재까지 최소 94명이 숨지고 7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약 300명은 여전히 연락 두절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980년대에 건설된 이 아파트는 31층짜리 건물 8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7동이 이번 화재로 소실됐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단지에는 약 46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40%가 65세 이상 고령자다.
화재가 하루를 넘겨 불길이 이어지면서 현지에선 화재가 어떻게 빠르게 확산했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두고 ‘사고가 아닌 인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화재 당시 아파트에선 외벽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러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화재 발생 당시 경보벨이 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입주민은 BBC에 “리모델링 공사 인부들이 비상계단을 자주 사용하면서 화재 경보가 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거주자는 또 건설 노동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창턱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됐고 입주민들은 화재가 나면 어떻게 될지 계속 물었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고 꼬집었다. 사실상 방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건물 외벽을 따라 설치된 대나무 비계(동과 동을 연결한 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 등 가연성 건축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나무 비계가 불길의 통로가 돼 화재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피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공사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공사 내용에 불안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그동안 주민들이 제기했던 문제들이 온라인에 공유됐고, 정보 비공개 및 부실 소통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사고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캐나다에 체류 중인 한 입주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우선시해 품질이 낮고 가연성이 높은 자재를 사용했다. 공사 계획이 처음부터 수상했지만, 입주민들의 문제 제기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책임자들이 작은 혜택을 미끼로 사정을 잘 모르는 고령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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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과 소방 당국은 공사 과정에서 사용된 망사(메시) 자재, 플라스틱·천막(캔버스) 시트 등이 화재 안전 기준을 충족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리모델링 공사를 담당했던 3명은 과실치사와 중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 당국은 부패 수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나무 비계는 홍콩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인 풍경이자, 여전히 널리 쓰이는 시공 방식이라고 BBC는 짚었다. 이 때문에 최근 수년 간 대나무 비계에 불이 옮겨붙어 건물이 전소되는 화재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홍콩에선 대나무 비계와 관련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 전역의 고층 공공주택과 노후단지에서 화재 안전 기준과 관리·감독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다.
홍콩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이날 대규모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인 모든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비계 구조와 건축 자재의 안전성을 점검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올해 초에도 더 견고하고 난연성이 높은 강재(철제) 비계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BBC는 “지난 63년 동안 홍콩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화재”라며 “1962년 8월 삼수이포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44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짚었다. 또다른 외신은 1948년 홍콩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의 최악의 인명 피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