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도 '잊혀질 권리가' 있다" 법원의 판결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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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1월 30일, 오전 12:01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살인자에게도 ‘잊혀질 권리가’ 있다”

2019년 11월 30일 독일 최고 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가 이 같은 판결을 내리며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사진=게티이미지)
이 사건의 원고는 1981년 12월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던 ‘아폴로니아’라는 범선에서 싸움 끝에 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살인마 A씨였다.

당시 43살이었던 A씨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만인 2002년에 석방됐다.

워낙 대중의 관심이 컸던 터라 이후 사건은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줬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다룬 1982년과 1983년 기사 세 건을 1999년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했는데, 자유롭게 검색이 가능한 이 기사에는 남성의 실명이 거론됐다. 책으로 출판된 것은 물론 독일 공영방송 ARD는 2004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2009년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슈피겔을 상대로 이름을 지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인터넷 기사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인격을 개선할 여지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2012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대중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며, 그의 이름은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범죄인의 인격 보호보다 언론의 공익적 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A씨는 물러서지 않았고 법정 공방을 이어 나갔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앞선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검색 엔진이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범죄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한 기사의 공익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판결했다. 사건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다만 이와 함께 ‘잊혀질 권리’는 범죄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모든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슈피겔 측은 “어떤 정보가 흥미롭게, 불쾌하게, 또는 사악하게 기억돼야 할지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 개인의 인격권에 자신과 관련된 과거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게 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잊혀질 권리’ ‘잊힐 권리’와 ‘정보의 자유’ 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개인의 기본권 보호에 민감한 유럽연합(EU)이 독일과 온라인 규제를 두고 충돌하는 지점 가운데 하나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는 개인들의 요청을 검색 엔진들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정보감시기관인 CNIL는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거부해온 구글에게 1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는데,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이 같은 판결은 유럽연합 사법권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판결을 따로 받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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