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 즐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가 아버지를 여의였다. 이후 어머니가 영국 장교 케네스 스토파드와 재혼하며 이름을 ‘토마스 슈트라우스러’에서 톰 스토파드로 바꾸고 8살 때 전후 황폐해진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7세에 잉글랜드 남서부 브리스톨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런던에서 잡지 극평론가로 활동했다. 1963년 방영된 ‘물 위를 걷다’를 비롯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용 희곡을 집필했으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불운한 조연 두 명의 시점에서 재해석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1966년) 무대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비극과 부조리 유머가 혼합된 이 작품은 1966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됐으며 로렌스 올리비에가 운영하던 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후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스토파드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며 펜(PEN)과 검열 감시단체 등과 협업했고, 냉전 시기 동유럽과 소련의 인권 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후기작 ‘레오폴트슈타트’는 홀로코스트 속에서 가족을 잃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유대인 가문의 20세기사를 다뤘다. 그는 어머니가 사망한 1996년 이후에야 자신이 유대인 가문 출신이며 조부모 등 많은 친척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토파드는 극작 외에도 영화, TV,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체코 반체제 작가이자 공산주의 붕괴 후 첫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의 희곡들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를 비롯해 ‘트라베스티스’, ‘더 리얼 씽’ 등으로 토니상 최고 연극상을 여러 차례 받았고,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1999년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1997년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세 번의 결혼을 했고, 네 명의 자녀를 뒀다. 배우 에드 스토파드는 그의 아들이다.
그의 전기 작가 허미온 리는 “스토파드의 작품은 언어, 지식, 감정이 어우러진 독특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그의 희곡이 때로는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그 속에는 상실과 그리움,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