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천국' 스위스, 상속세 50% 제안 국민투표서 부결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01일, 오후 07:15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스위스에서 초부유층을 대상으로 50%의 상속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됐다. 증세 탓에 고액자산가가 다른 국가로 이탈하면 오히려 국가 경제에 손실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마감한 국민투표에서 해당 초부유층 증세안은 스위스 유권자 78%가 반대하면서 부결됐다.

급진 좌파 성향의 ‘청년사회주의자당’이 제안한 해당 증세안은 5000만프랑(약 914억원)을 초과하는 유산 과 증여분에 대해 50%의 연방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대상은 스위스 인구의 0.03%인 약 2500명이었다. 이 같은 제안은 스위스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지방 분권적·저부담 세제 기조와 차이가 크다.

청년사회주의당은 새롭게 걷힌 세금을 기후변화 대응 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며 “부자들이 경제 성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만큼 지구 환경 훼손의 책임도 더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해당 제안에 반대 견해를 분명히 해왔다. 해당 제안을 통과하면 초부유층의 이탈로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도 초부유층을 겨냥한 증세안이 ‘억만장자의 자산 보금자리로’서 스위스의 경쟁력을 훼손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스위스는 고액자산가 중심의 은행 산업과 일부 주(칸톤)의 낮은 세율을 기반으로 부유층 유치를 이어왔다. 스위스 최대 금융그룹 UBS에 따르면 스위스는 인구 100만 명당 억만장자가 9명 이상으로 서유럽 평균보다 5배 더 많다. 하지만 최근엔 노르웨이·영국 등 고세율 국가에서 이탈하려는 부유층 유치를 놓고 두바이·아부다비·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중동의 금융 중심지와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KPMG 스위스의 세무 전문가 필리프 쥔트는 “만약 찬성으로 결정됐다면 스위스 조세환경이 크게 바뀌는 중대한 변화가 될 뻔했다”며 “유권자들이 스위스를 안정적인 비즈니스 허브로 다시 확인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스위스에서는 남성에게만 적용하고 있는 병역 의무를 여성까지 확대하는 제안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84%가 반대해 부결됐다. ‘시민 복무 이니셔티브’란 이름의 이 안건은 여성도 남성처럼 군대나 민방위대, 또는 기타 형태의 국가 복무 의무를 이행하자고 제안했다.

지지자들은 산악 지역의 산사태, 평야 지역의 홍수, 사이버 공격, 에너지 부족 위험, 유럽 내 전쟁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모든 시민이 위기 대응의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와 의회는 “군이 이미 충분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젊은 인력을 노동시장 밖으로 끌어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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