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AFP)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유럽 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빌려주는 이른바 ‘배상금 대출’(reparations loan)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지원 규모는 사용 가능한 러시아 동결 자산 2100억유로(약 359조 7400억원) 중 900억유로(약 154조 1700억원)다. 나머지 금액은 추후 필요할 경우에 한해 인출하겠다는 방침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정적 수요의 3분의 2를 충당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나머지 3분의 1은 국제사회 파트너들이 조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러시아 동결 자산 대부분이 몰려 있는 벨기에의 우려를 의식해 EU 공동 차입에 기반한 또 다른 대출 옵션도 함께 제안했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오는 18∼19일 회의에서 두 옵션 중 어떤 방식을 택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EU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2년간 1400억유로(약 239조 8600억원)를 무이자 대출하는 배상금 대출을 추진해 왔으나 벨기에의 반대에 부딪혀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EU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대부분이 벨기에 중앙예탁기관(CSD)인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어 벨기에는 반대를 고수해 왔다. 향후 법적 책임을 떠안는 등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해서다. 러시아는 EU와 벨기에에 동결 자산에 손을 대면 절도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우크라이나 종전이 가시화하자 EU는 벨기에의 반대에도 이번 계획을 적극 밀어붙이게 됐다.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입장에서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진행하게 되면 향후 러시아가 EU 안보까지 위협할 우려가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금 지원이 “강력한 위치에서 평화 협상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압박이야말로 크렘린궁이 반응하는 유일한 언어인 만큼 우리는 이를 배가해야 한다.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비용을 늘려야 한다. 오늘의 제안이 그러한 수단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또 벨기에가 제기한 거의 모든 우려도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동결 자금이 ‘대출’(빌려주는)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산을 그냥 빼앗는 ‘자산 몰수’와는 다르다는 게 그와 EU의 설명이다.
◇벨기에 반대 여전…“법적 책임·러 보복 우려”
EU 집행위는 또 벨기에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다른 EU 국가에 동결된 약 250억유로 규모의 러시아 동결 자산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든 회원국들이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에 대한 법적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할 것이라는 얘기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EU 집행위 제안에 대해 “EU법과 국제법에 전적으로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벨기에는 이날 EU의 계획이 단기적으로 미국이 추진하는 평화 협정을 위태롭게 하고 향후 러시아의 법적 조치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기존의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EU 집행위가 회원국 의사에 반해 사기업인 유로클리어에서 자산을 몰수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막심 프레보 벨기에 외무장관도 “우리의 우려를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우리는 배상금 대출 방식은 위험하고 전례가 없어 최악의 선택지임을 거듭 이야기해 왔다”며 EU가 채권 발행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EU의 계획을 지지하는 대다수 회원국들은 오히려 벨기에를 비판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아울러 이날 공개된 EU 집행위의 제안은 만장일치가 아닌 회원국 인구·경제력·영향력 등을 고려해 표를 배정하는 ‘가중다수결’로 승인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EU는 이날 러시아산 가스 수입도 내년 4월부터 2027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전면 합의했다. 이 역시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반대로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EU는 이외에도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 위험이 높은 국가 블랙리스트에 러시아를 추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