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집무실 ‘결단의 책상’에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을 중심으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오른쪽)과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서 있다.(사진=AFP)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기관 투자자가 미 재무부에 해싯 위원장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금리를 과도하게 인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해싯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대로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상황에서도 무차별적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미 재무부가 월가 대형 은행과 글로벌 자산운용사, 미국 국채 시장 주요 참여자와 일대일 면담을 통해 해싯 위원장을 포함한 여타 연준 의장 후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베선트 장관은 연준 의장 후보들에 대한 2차 면접을 진행하기에 앞서 업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로 베선트 장관은 이번 연준 의장 인선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이런 월가의 날 선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 지명에 가까워지면서 시장 전반에 형성된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고 FT는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공개 비난하면서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스티브 마이런 연준 이사 지명, 리사 쿡 연준 이사 해임 시도,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문제 제기 등을 통해 연준을 지속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채권 시장에선 해싯 위원장보다는 연준의 독립성을 고수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나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라이더 채권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선호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미셸 보먼 연준 이사(은행 감독 부의장 겸임) 등이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 “누구도 제2의 ‘트러스 사태’ 원하지 않아”
한 시장 참여자는 FT에 “그 누구도 ‘트러스 사태’를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감세를 추진하면서 재정 부족은 국채 발행으로 메우겠다고 밀어붙이자 영국 국채시장이 패닉에 빠진 사건을 말한다. 이후 영국의 국채 금리는 폭등했고 파운드화 가치는 떨어졌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45일 만에 사임했고 그의 후임자인 리시 수낵은 경제정책의 급선회를 택했다.
또한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해싯 위원장이 현재 극심하게 분열된 연준 이사회를 설득하고 통화 정책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능력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뉴센추리 어드바이저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클로디아 삼은 “해싯 위원장은 연준 의장직을 수행할 역량이 충분하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 참여자일지 아니면 독립적인 경제학자일지 그가 보여줄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존 스토퍼드는 “시장에서는 그를 ‘트럼프의 꼭두각시’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연준의 신뢰도를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NEC 위원장엔 베선트 겸직 검토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이 해싯 위원장 후임으로 베선트 장관을 NEC 수장을 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역할이 다소 축소됐으나 NEC는 백악관에서 조세, 보건의료, 에너지 등 모든 경제정책을 다루며 연방 정부 전반의 정책과 구상을 조정하는 핵심 기관이다.
베선트 장관이 재무장관직과 NEC 위원장을 겸한다면 재무부와 백악관을 총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모두 쥐게 된다. 베선트 장관으로선 NEC 위원장으로서 백악관 웨스트윙에 사무실을 마련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도 더욱 가까워진다.
이 같은 겸직 구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특징으로 꼽힌다. 베선트 장관은 이미 국세청(IRS) 국장 대행을 겸임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임시 청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