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요구에도…'홍콩 반중 인사' 지미 라이, 유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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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2월 15일, 오후 02:52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홍콩의 반중(反中) 인사인 지미 라이(78)가 1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로 라이는 최대 종신형을 선고 받을 수 있어 그로인해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의 반중 매체 빈과일보 사주였던 지미 라이(사진=AFP)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홍콩고등법원은 이날 라이가 외국 세력과 공모하는 등 2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이는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재판부는 또한 핑궈(빈과)일보의 창업자인 라이가 선동적 출판물을 공모해 발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그는 재판부의 판결을 듣는 동안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으며 법정을 떠나 다시 구금 시설로 이송되기 전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가족과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라이는 국가보안법 시행 직후인 2020년 8월에 체포돼 그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1800일 넘게 최고 보안 등급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고 그중 상당 기간을 독방에서 보냈다.

형량 선고는 추후 내려질 예정이며, 형량을 결정하는 다음 공판은 내달 12일로 예정돼 있다.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라이 측 변호인은 밝혔다.

국가보안법 전담 판사 3명이 작성한 865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라이가 중국공산당(CCP)의 붕괴를 도모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라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통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으며,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에도 더 은밀한 방식으로 이를 지속하려 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여타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과 마찬가지로 배심원 없이 진행됐다. 이는 홍콩의 영미법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조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라이가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를 정치적 도구로 운영했으며, 신문을 통해 홍콩 정부와 중앙정부의 정당성을 “의도적으로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라이에게는 개인적 영향력과 자금을 활용해 특히 미국 등 외국 정부에 로비를 벌이고, 홍콩과 중국에 대한 제재를 유도하며 시위 운동을 지원하려 했다는 혐의도 적용됐다. 판사들은 이를 “미국 시민이 캘리포니아주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러시아에 미국 정부 전복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특히 재판부는 2020년 6월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에도 라이의 범죄 행위가 중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19년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를 계기로 대규모 반중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졌다. 이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중국 정부에 가장 큰 도전이 됐다. 이후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시행됐다. 국가 분열과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개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이번 판결로 미중 간 정치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이를 “구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으며, 올해 10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라이의 석방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영국 시민권자인 라이의 석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번 재판은 국제 인권 단체들의 비판도 불러왔다. 이들은 재판이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뤄졌다고 규탄했다. 반면 중국과 홍콩 당국은 이러한 지적을 내정간섭으로 규정하고 라이가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광둥 출신인 라이는 12세에 홍콩으로 밀항해 불법 노동자, 사무보조원, 영업사원 등을 거쳐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그는 1981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89년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시위 이후 그는 홍콩의 시민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핑궈일보, 넥스트매거진 등을 창간해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지금은 모두 폐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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