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 더 베버 벨기에 총리. (사진=AFP)
EU는 18일(현지시간) 이틀 일정의 정상회의를 열고 유럽 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빌려주는 이른바 ‘배상금 대출’(reparations loan) 계획을 논의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앙예탁결제기관 유로클리어에 예치된 러시아 중앙은행 등 러시아 정부 보유 자산 약 2100억유로를 담보로,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900억유로를 대출해준다는 내용이다.
이 자금을 활용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재정 운용·무기 조달을 지원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협상 구도에서 유럽이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EU 정상들은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이 우크라이나 재정난을 메우는 가장 실질적인 수단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러시아 동결 자산 대부분이 몰려 있는 벨기에는 국제법·금융안정·보복 위험 등을 이유로 강경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르트 더 베버 벨기에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동의할 수 없다. 유로클리어와 벨기에의 금융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에는 어떠한 유연함도 없다. 그런 조항들이 삭제되지 않으면 나를 들것에 실려 나가야 할 것”이라며 단호한 반대를 표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벨기에의 입장을 바꾸게 할 어떠한 문안도 보지 못했다”며 러시아의 보복이 발생할 경우 그 위험과 비용을 다른 회원국들이 함께 부담한다는 법적·재정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 고위 관리들은 전날 밤 더 베버 총리 및 벨기에 측 관리들과 별도 협의를 진행했다. 관리들은 법적 안전장치와 관련해 일정 부분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러시아에 상환해야 할 경우를 대비한 유동성 공급 장치와 러시아 내 유로클리어 자산 보호 범위를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방공 미사일 바닥, 드론 생산도 차질” 호소
이날 회의에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직접 참석해 벨기에를 포함한 EU 정상들을 상대로 강한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대출 자금을 드론과 기타 무기 확보에 사용할 계획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가 긍정적인 결정을 얻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오늘 결과는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훨씬 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일부 방공 시스템용 미사일이 이미 바닥난 상태다. 드론 생산도 몇분의 1로 감소할 것”이라며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혹도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벨기에 측과 개별 회동한 뒤에도 “더 베버 총리가 말하는 위험을 이해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다. 그는 정상회의장에 도착하며 “오늘 돈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내일 피를 흘리느냐의 문제”라며 “이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의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AFP)
더 베버 총리는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하는 대신 EU 공동예산을 담보로 한 회원국 공동차입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헝가리가 이미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데다, 독일·네덜란드 등 이른바 ‘절약국’들이 공동채무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난관이 예상된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일부 국가들도 벨기에와 함께 동결 자산 활용 방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재원 조달 옵션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 EU 외교관은 “실제 충돌은 동결 자산을 쓰자는 쪽과, 새로운 공동부채를 원하지 않는 쪽 사이에 있다”고 지적했다.
EU 관리들은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회의를 밤샘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정상회의도 당초 19일 종료 예정이지만 필요할 경우 연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이 회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U는 이날 러시아가 서방의 원유 가격 상한제를 회피하기 위해 운용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41척에 대한 제재도 단행했다. 이로써 EU 제재 대상이 된 선박은 약 600척으로 늘었다. 해당 선박들은 EU 항만 입항 금지와 해운·보험 서비스 제한 등 추가 제약을 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