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직 EU 집행위원 등 5명에 비자 불허…“SNS에 검열 강요”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24일, 오후 03:0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이 전직 유럽연합(EU) 집행위원 등 5명에 대해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미국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을 상대로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의견·콘텐츠를 삭제 또는 노출을 줄이도록 강요(coerce)했다는 혐의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사진=AFP)


◇EU, DSA 근거해 X에 벌금 부과…법안 설계자에 보복

23일(현지시간) AP통신, BBC방송 등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티에리 브르통 전 EU 디지털 정책 담당 집행위원을 포함해 5명에 대해 비자 발급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EU가 최근 X를 상대로 광고 투명성 및 사용자 검증 방식과 관련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위반했다며 1억 200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한 데 따른 보복 대응이란 해석이 나온다. 앞서 EU 집행위는 X가 이용자에 대한 ‘의미 있는 검증’ 없이 ‘블루 인증’(파란색 체크마크)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계정처럼 보이도록 해 이용자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X는 EU 집행위의 플랫폼 내 광고 집행을 차단했다.

미 국무부는 비자 발급이 거부된 브르통 전 위원을 ‘DSA의 설계자(mastermind)’로 규정했다. 그는 현역 시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기술기업 경영진들과 EU 규정 준수 의무를 놓고 여러 차례 충돌한 바 있다.

DSA는 온라인상 가짜뉴스와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기 위해 마련된 법안으로, 주요 SNS 플랫폼에 콘텐츠 조정(모더레이션)과 기타 기준을 부과하는 핵심 근거다. 이 법에 따르면 유럽에서 운영되는 SNS 플랫폼은 콘텐츠 관리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사용자에게 투명성을 제공하며, 연구자들이 아동이 위험한 콘텐츠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위반시 글로벌 연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 보수진영은 DSA가 유럽 안팎에서 보수적 콘텐츠에 대한 검열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며 강력 비난해 왔다. EU는 이런 비난을 강하게 부인해 왔다.

브르통 전 위원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는 이번 조치를 미국의 매카시 시대(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공직자들이 쫓겨났던 시기)에 비유하며 “미국 친구들에게: 검열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고 일침했다.

장누엘 바로 프랑스 외교장관도 X에 “프랑스는 이번 비자 제한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유럽은 디지털 공간을 규율하는 규칙을 다른 이들이 대신 정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그는 “DSA는 유럽에서 민주적으로 채택된 법”이라며 “이 법은 미국에 대해 절대적인(강제적) 효력을 갖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미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진=AFP)


◇美보수 반발 산 시민단체 대표 등도 포함

이번 비자 발급 거부 대상엔 브르통 전 위원 외에도 온라인 혐오·허위정보·가짜정보에 대응하는 비영리단체 ‘디지털 증오 대응 센터’(CCDH)의 임란 아메드도 포함됐다. 이 단체는 머스크 CEO가 옛 트위터를 인수해 X로 이름을 변경한 뒤 그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던 곳이다. 이번 제재에 머스크 CEO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독일 단체 ‘헤이트에이드’(HateAid)의 공동 대표인 안나레나 폰 호덴베르크와 요제핀 발론도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미 국무부는 이 단체가 DSA 집행을 돕는 ‘신뢰할 수 있는 신고자’(trusted flagger) 역할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영국 ‘글로벌 디스인포메이션 인덱스’(GDI)를 이끄는 클레어 멜퍼드가 명단을 채웠다. GDI는 허위정보 확산 방지를 추구하는 비영리조직이다. 미국은 ‘영국판 DSA’로 불리는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에도 공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이 급진적 활동가들과 무기화된 비정부기구(NGO)들은 외국 국가들에 의한 검열 탄압을 주도해 왔으며, 그 모든 경우가 미국인 발언자들과 미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미국 최우선’(America First) 외교 정책을 분명히 해왔다”며 “미국의 표현의 자유를 겨냥한 외국 검열 당국의 월권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라 B. 로저스 미 공공외교 담당 차관은 GDI에 대해 “미국 납세자의 돈을 사용해 미국의 언론과 표현에 대한 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메드에 대해선 “미 행정부가 미국 시민을 겨냥해 정부 권력을 무기화하려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노력에 핵심적으로 협력한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GDI 대변인은 BBC에 “이번 비자 제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위주의적 공격이며, 명백한 정부 검열 행위”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한번 연방정부의 힘을 총동원해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목소리를 위협·검열·침묵시키려 하고 있다. 오늘의 조치는 부도덕하고, 불법적이며, 비(非)미국적”이라고 지적했다.

호덴베르크와 발론 공동 대표들도 “법치주의를 점점 더 무시하고 비판자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침묵시키려는 미 정부의 억압 행위”라며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검열이라는 비난을 남용하는 정부에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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